|
|
 |
|
 494,  1/25 |
|
 |
 전혜리 |
 |
 |
6월 10일 대표 기도 |
|
사랑과 은혜의 주님,
어느덧 장미의 계절 6월입니다.
길거리마다 짙은 초록 잎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빨간빛으로 풍성하게 피어있는 장미는
보기만 해도 눈이 맑아지며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러나 곧 정열적으로 불타오르던 장미의 계절은 지나가고
다른 것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여 다가오겠지요.
영국의 대문호 세익스피어는
세상은 연극무대이고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저도 살아오는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역할들을 연기했네요.
항상 구박받고 야단맞아 두려움 많고 수줍어하며 어리버리한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역할도,
세상 모든 어른들을 불신하고 무시하며 반항심 많고 우울한 사춘기 소녀 역할도,
사회의 불합리에 분노하고 저항하며 데모마다 빼놓지 않고 참여하는 사회개혁자의 역할도,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불같은 사랑에 빠져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정열의 여인 역할도,
지혜로운 엄마와 남편을 잘 보필하는 현모양처의 역할도,
접시닦이, 간병인, 파출부 등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가난하고 고달픈 유학생 아내 역할도,
남편의 학위가 내 것인 양 의기양양하고 한껏 잘난척하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여인 역할도,
돈도, 지식도, 건강도, 주변의 도움도 없이 홀로 버텨내야하는 상황에
공황장애까지 앓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과 외로움에 벌벌 떠는 늦깎이 학생 역할도,
어찌어찌 졸업하고 주변의 무시와 홀대를 견디고 버텨 인정받는 상담자와 교수 역할도,
준비 없이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책임지고 운영하며 고민하는 운영자의 역할도,
최근엔 어지럼증과 두통으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며 고생하는 환자 역할까지,
나이와, 개인 상황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수많은 역할들을 열심히 연기했고 지금도 연기하고 있네요.
역할들이 하나씩 다가올 때마다
마치 그 역할이 나 자신인 것처럼 덥썩 받아 안고 정신없이
그 역할과 하나 되어 열심히 연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는 이건 아닌데, 이렇게 살기 싫은데, 이거 말고 다른 삶이 있을 것 같은데, 고민하지만
정말 내가 맡아야할 역할이 무엇인지 몰라
이 역할이 맞을까, 저 역할이 맞을까, 역할들을 바꿔보다가
이게 맞을거야, 이번에는 진짜일거야,
스스로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자위하며 여러 역할들을 바꾸고 거쳐 왔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만족스럽고 진짜 내 역할을 찾았다고 안심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익스피어가 말한 연극배우라는 말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는 참된 내가 아니라는 뜻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좀 더 생각해보면 연극무대라는 것은 벌어지는 상황이 사실이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이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연기했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도 마치 남이 억지로 떠맡긴 것처럼 억울해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동안 살아온 삶이 마치 자해공갈단 같다고 느껴집니다.
주님,
그러면 나의 진짜 역할은 무엇일까요?
정말로 영원히 변치 않고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역할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역할은 아버지를 닮아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존재이겠지요.
부족함이 없다면 무엇을 잘하려고 애쓰거나, 누구의 인정을 받으려고 눈치를 보거나 할 필요가 없겠지요.
돈, 명예. 권력, 건강, 관계 등 세상의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조건에 영향 받지 않는 참 자유함의 존재이겠지요.
그래서 두려운 것도, 부러운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미운 것도, 화 나는 것도 없는
진정한 사랑과 평화의 존재이겠지요.
혹시라도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아픔과 슬픔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낀다면 당신이 멀리 있다고 느끼는 것이고,
그때 “아버지, 아빠”라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바로 옆에서 “내가 여기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너의 것이다, 두려워 말라” 하시겠지요
그러면 제 마음에는 평안함과 고요함, 사랑과 기쁨, 행복과 자유로움이 충만히 차오를 것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거기 객석에서 제가 하는 연극을 다 보고 계셨나요?
마치 역할이 나인 것처럼, 영원히 해야 할 것처럼 죽을 둥 살 둥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계셨나요?
그 모습을 보고 당신의 마음은 어떠셨나요?
“얘야. 너무 애쓰지 말아라,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해도 너는 사랑받고 있단다. 너는 이미 빛이고 사랑이란다” 말씀하고 계셨나요?
아버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역할만 기억하고
당신과 함께 객석에 앉아 느긋한 마음으로 다른 역할들의 남은 연극을 무심히 초연히 바라보고 싶습니다.
연극을 보는 동안 잠깐 긴장하고, 잠깐 슬퍼하고, 잠깐 불안할 때도 있겠지만,
이것은 연극이야, 실재가 아니야.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곧 끝날거야, 말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경험을 맛보는 마음으로, 이야기의 진행이나 결말에
영향을 받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즐기고 싶습니다.
지난 봄, 노란 개나리가, 연분홍 벚꽃이, 진분홍 철쭉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자기 역할을 잘 해주었지만
지금은 빨간 장미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고,
다음엔 또 다른 배우가 나와 자기 역할을 열심히 할 테지만
아무도 슬퍼하거나 영향 받지 않고 또 즐겁고 기쁘게 바라봐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게 초연하고 무심하게 남은 연극무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