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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I want to go Home (시23:1-6)


  어떤 나그네가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걸어 지쳤습니다. 마침 마차 한 대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손을 들어 마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같이 타고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승낙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마차에 올라탄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루살렘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마부가 대답했습니다. “지금 이 속도로 간다면 반나절 정도 걸립니다.” 피곤한 탓에 나그네는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반나절쯤 지나서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는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의 다 왔나요?” 마부가 대답했습니다. “이 속도라면 한나절은 족히 걸립니다.” 깜짝 놀란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아니, 아까 반나절이라 했잖소? 반나절 얼추 온 거 같은데 지금부터 한나절 걸린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마부가 대답했습니다. “이 마차는 예루살렘 반대 방향에 있는 여리고로 가는 중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대인들의 지혜 등을 담은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마차는 여리고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차에 올라탄 나그네가 대뜸 여기서 예루살렘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 마차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거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부는 이 속도라면 반나절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풀어서 보면 이런 겁니다. 이 마차는 지금 여리고로 가고 있지만, 만약 거꾸로 예루살렘으로 간다면 반나절 걸린다는 겁니다. 이 사태의 책임을 마부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마부가 틀린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부가 친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마부는 묻는 말에 정확히 대답한 것입니다. 책임을 묻는다면 나그네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그네는 마부에게 처음에 이 마차가 예루살렘으로 가느냐고 물어야 했던 것입니다. 반대 방향인 여리고로 가는 걸 확인하고 그 마차를 타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는지 모른 채 무조건 걸어가는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을 꼬집고 있습니다.

  흔히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빠른 속도를 중시합니다. 걸어서 가는 것보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빨리 가게 되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 더 빨리 가게 됩니다. 이런 경우 비행기를 탈 수 있으면 비행기를 타고 빨리 가려고 할 것입니다. 분명 빨리 간다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른 방향입니다. 바른 방향이 전제되지 않은 빠른 속도는 오히려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컨대 원주에서 서울로 가려면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동쪽으로 빨리 가면 목적지로부터 더 빨리 멀어질 뿐입니다.

  따라서 인생에서 올바른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1차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올바른 방향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무조건 빨리만 가면 되는 줄 압니다. 또한 올바른 방향의 중요성을 알아도 어느 방향이 올바른 방향인지 잘 모릅니다. 원주에서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서울이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 있는지 모르는 겁니다. 따라서 진정한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첫째로 올바른 방향의 중요성을 아는 것이고, 둘째로 어느 방향이 올바른 방향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나라 왕이 원인 모를 불면증으로 고통당했습니다. 의사들을 불러 온갖 처방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문간에서 자기 경비병과 어떤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이 공회당에서 하루 자고 가야겠소.” 공회당이란 일반 대중의 모임 등에 쓰기 위하여 지은 집을 뜻합니다. 경비병이 말합니다. “여기는 공회당이 아니라 이 나라 왕이 살고 있는 왕궁이요. 마을에 가면 공회당이 있으니 거기를 찾아가시오.” 그 사람은 고집을 부립니다. “아니, 여기가 공회당임이 틀림없소.” 왕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을 안으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오는데, 누더기를 걸치고 있지만 속에서는 광채가 나는 노인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거지 같지만 범하기 어려운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왕이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왕궁엘 찾아와 왜 공회당이라고 우기는 거요?” 노인이 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되묻습니다. “오래전에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여기가 자신의 궁전이라고 했소. 그 사람은 지금 어디 갔소?” 왕이 대답합니다. “아, 그분은 내 아버지이신데 지금은 돌아가셨소. 내가 왕위를 물려받았지요.” 그러자 노인이 다시 묻습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 또 다른 사람이 역시 그 자리에 앉아서 여기가 자신의 궁전이라 했소. 그 사람은 지금 어디 갔소?” 왕이 대답합니다. “아, 그분은 내 할아버지이신데 지금은 돌아가셨소.” 노인이 또다시 묻습니다. “내가 여기를 수도 없이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매번 다른 사람이 여기가 자기 집이라 하였소. 지금은 당신이 여기가 당신의 집이라 말하지만, 다음에 다시 오면 또 다른 사람이 자기 집이라고 하지 않겠소? 그렇다면 도대체 여기가 누구의 집이오? 그래서 나는 여기가 여러 사람이 머무는 공회당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틀렸소?” 왕은 그 순간 큰 깨달음이 올라왔습니다. 왕은 왕좌에서 내려와 공손하게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맞습니다. 여기는 공회당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머무십시오. 나는 이제 진정한 내 집을 찾아 떠나겠습니다.” 그날로 왕은 왕궁을 떠나 어디론가 가 버렸습니다. 나중에 왕은 훌륭한 도인이 되었습니다.

  노인의 말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역대의 왕들이 모두 왕궁이 자신의 집이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의 주인이 계속 바뀌는 겁니다. 도대체 누가 진짜 주인입니까? 모두가 왕궁이 자기 집이라고 하는데 누구도 자기 집에서 계속 살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집이 어찌 자기 집이라 하겠습니까? 영원히 주인으로 사는 진짜 집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진정한 나의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곳이 진정한 나의 집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집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집이란, 그 집에서 살 때 걱정과 미움과 두려움을 안 느끼는 겁니다. 평화와 사랑과 기쁨으로 살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대체로 큰 집, 고급 집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바람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집에서 살면서 걱정과 미움과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건 가치가 별로 없지 않을까요?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왕도 가장 고급 집이라 할 수 있는 왕궁에서 살면서 깊은 불면증으로 고통당했습니다. 그런 상태로 왕궁에서 살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노인은 바로 그런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화려한 집을 가지려는 바람 이전에, 우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집을 가지려는 바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 평화와 사랑과 기쁨이 가득하다면 작은 집도 상관없습니다. 물론 큰 집도 좋습니다.

  찬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님을 모신 곳이라면 초막도 좋고 궁궐도 좋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초막에서 벗어나서 궁궐에서 살려는 바람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바람 이전에 우선 내 주 예수를 모신 집에서 살려는 바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의 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큰 집에 대한 기대로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만나려 합니다. 그런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크고 화려한 집에서 살려는 것은 속도를 중시하는 것과 성격이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나의 집에서 살려는 것은 방향의 중요성을 아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집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올바른 방향을 아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방향은 동서남북 공간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삶을 지향하는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올바른 방향을 아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목적지가 서울인데 원주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은 일단 바른 방향을 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무조건 서쪽으로만 가면 안 됩니다. 가다 보면 인천이 나올 수도 있고, 수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서쪽으로 정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더 나아가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원히 내가 주인으로서 사는 진정한 나의 집이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집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올바른 방향을 아는 일일 뿐만 아니라 정확한 목적지를 아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살려는 목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사람이 행복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길을 나섰습니다. 원주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한 사람도 있었고, 북쪽이나 남쪽으로 향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서쪽으로 향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중에서 일부는 인천이나 수원에 도달하고는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아쉬운 일입니다.

  우리는 정확히 서울을 목적지로 하여 걸어가려고 합니다. 서울에 가까워지는 만큼, 곧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느끼는 만큼, 걱정과 미움과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대신 평화와 사랑과 기쁨이 커집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집을 허락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집도 상관없습니다. 집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집이면 작은 집의 장점을 살려 평화롭게 살고, 큰 집이면 큰 집의 장점을 살려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집의 크기가 평화를 주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가 평화를 줍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평화를 위하여, 혹은 행복을 위하여 집의 크기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방향의 중요성을 모르고, 더 나아가 정확한 목적지를 모르고 속도에만 관심을 쏟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왕이 왕궁을 떠난 것은 방향의 중요성을 깨달은 일입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올바른 방향을 알게 된 거 같습니다. 더 나아가 목적지도 알게 되어 목적지에 도달했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의 집에 도달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집에 가고 싶다.”는 강한 염원이 필요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 want to go Home.”의 염원입니다. 그리고 그 집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 집임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아쉬움이 없어라.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위로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 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니, 나는 주의 집에서 영원토록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크든 작든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나 주택에서 하나님과 함께 산다면,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하 전세방도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는데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호천사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겁니다. 그리하여 마음에 평화와 사랑과 기쁨이 흐르는 겁니다. 거친 세파가 몰려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상처 입은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미움이 없습니다. 바로 그곳이 진정한 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이기도 하고 나의 집이기도 한 그런 집입니다. 참 신앙의 길은 바로 그 집을 찾아 나서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을 찾아 나서십시오. 그 말은 앞의 이야기에 나오는 왕처럼 꼭 자기가 사는 집을 떠나 어딘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사는 집이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집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십시오.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에 대해 태산 같은 신뢰를 가지십시오. 그 신뢰로 말미암은 평화, 그것이 신앙인이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비신앙인은 세상이 주는 평화를 추구하는데, 신앙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추구합니다. 여러분이 그 집의 영원한 주인으로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

주님,
많은 사람이 빨리 가고 싶어 합니다.
그중에서 일부는 부당한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빨리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빨리 가는 것의 문제점을 알아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좀 뒤처지는 한이 있더라도 과정을 중시하며 느림을 선택하여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은 참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올바른 방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빨리 가든 느리게 가든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면 둘은 똑같이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게 도와주옵소서.
더 나아가 올바른 방향을 넘어서 분명한 목적지를 알게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그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도와주옵소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을 모신 집,
늘 하나님의 사랑에 감싸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집,
바로 그 집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도와주옵소서.
또한 그 천국 집은 머나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성령의 보호와 인도로 그 집을 향해 올라갈 때
그때 비로소 빨리 그 집에 다다르려고 노력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여정에서 점점 사랑과 평화와 기쁨이 커가는 복된 인생으로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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