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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사랑이 샘솟게 하소서 (요일4:18))


  지난 2007년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범인 자신을 포함 33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사건의 범인은 버지니아 공대 영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국인 조승희였습니다. 조승희는 8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가서 거기서 자랐습니다. 그 사건은 어려서부터 매우 내성적 성격이었던, 조승희 안에 숨겨져 있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자 한국 유학생들은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여 다수가 귀국했습니다. 또한 현지 한인들도 신변에 불안을 느꼈고, 여행객들도 미국 여행을 많이 취소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조승희의 분노와 한인들의 두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감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종류의 감정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은 분노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됩니다. 자신을 해치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줍니다. 분노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도 조승희의 분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분노의 힘은 대단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걱정과 근심의 원인이 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현재를 망칩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기도 합니다. 요즘 코로나 국면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의 힘 역시 대단합니다.

  확실히 분노나 두려움은 큰 힘을 발휘하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분노나 두려움을 촛불이라 한다면, 사랑은 태양입니다. 촛불의 힘과 태양의 힘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촛불은 그저 깜깜한 밤에만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니까 분노나 두려움이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자신이 깜깜한 밤의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나타나면 그런 것들은 대낮의 촛불처럼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우리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합니다.

  앞에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으로 한국 유학생들이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아주 달랐습니다. 미국 언론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에서 90%의 사람들이 그 사건을 조승희 개인의 문제로 보지, 그의 출신 국가와 연결하여 보지 않는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실제로 보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5일이 지나서 그 대학 중앙광장에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축구공 반쪽 크기의 화강암 추모석 33개가 타원형으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중엔 놀랍게도 범인 조승희의 것도 있었습니다. 그의 범죄는 잔인했지만, 그에 대한 학교와 사회의 적절한 치료와 상담이 이뤄지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하고, 그를 잃은 가족들을 위로하는 취지였습니다. 범인인 조승희도 희생자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조승희의 추모석에는 장미꽃과 백합과 카네이션 등이 촛불과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거기 이런 내용의 메모가 있었습니다. “내가 너한테 몹시 화가 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를 증오하지 않아. 네가 아무런 도움이나 위로를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파. 모든 사랑을 담아서. 로라.” 또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필요로 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참 슬펐다. 너의 가족들이 조만간 위안과 평안을 찾기를 바란다. 주님의 은총을 기원한다. 바버라.”

  학생들은 그 전날에도 추모 행사를 가졌는데, 희생자 32명에 조승희를 포함하여 33명의 죽음을 슬퍼하는 종을 33번 쳤습니다. 하늘로 올려보낸 풍선도 33개였습니다. 이 풍선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던 학생들은 끝내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승희도 우리 학교 학생이었고, 모두 33명의 학생이 죽었다. 우리는 모두의 죽음을 공평하게 슬퍼해야 한다.”

  학생들이 만드는 인터넷 신문에도 조승희 가족을 위로하는 글들이 잇달아 실렸습니다. 조승희의 누나인 조선경이 사과문을 발표하자, 그에 대한 댓글에서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나 당신 가족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또 어떤 네티즌은 “희생자 유족들을 위해 용기 있게 나선 조선경 씨에게 감사한다. 조 씨의 가족을 내 기도 명단에 올렸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조승희의 추모석과 편지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그러자 그 편지를 썼던 학생은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만약 기회가 있었다면 조승희를 반드시 친구로 만들었을 거라고, 그는 친구가 필요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추모석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다른 편지와 조화 등은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를 용서한다. 너는 틀림없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랐을 거야.”라고 쓴 새로운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또 이런 내용의 편지도 있었습니다. “너는 우리의 힘과 용기와 자비심을 엄청나게 과소평가했다. 너는 우리의 마음을 찢었을지는 모르지만 영혼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야구공과 흰색 초가 새로 놓여 있었고, 천사가 그려진 그림 카드, 인형 등도 추가되었습니다.

  대학 당국도 사건 발생 일주일 후, 교직원과 학생들이 참석한 추모제를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3차례 종을 울리고, 33개의 흰색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33개의 하얀 깃발을 버지니아 공대 교회 앞에 설치하여, 조승희를 희생자와 함께 대우하였습니다.

  저는 그 사건과 관련하여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미국 청년 한 사람이 우리나라의 어떤 대학에 다니면서 똑같은 사건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그랬다면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버지니아 공대 학생과 교직원처럼 반응했을까요? 그 미국 청년을 용서하며 희생자에 포함시켰을까요?

  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가, 오래전 당시 중학생이었던 미선이와 효순이가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선이와 효순이에 대한 추모 행사를 하면서 미국을 규탄하였습니다. 미국 국기를 불태웠습니다. “양키 고 홈!”이라고 외쳤습니다. 미국이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계속하여 규탄 집회를 했습니다. 처음에 추모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 순간부터 추모보다는 미국 규탄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러니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은 고의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법률적 표현으로 과실치사입니다. 하지만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고의적인 살인이었습니다. 잔혹한 살인이었습니다. 과실치사 사건에 보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응과, 고의적이고 잔혹한 살인 사건에 보인 미국 학생들의 반응은 정말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미국 학생들의 반응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들은 태극기를 불태우지도 않았고, “코리안 고 홈!”이라고 외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추모 집회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미국 학생들의 추모 집회에는 다만 슬픔과 애도만이 있었습니다.

  미국 학생들의 반응에는 바로 사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살인마 조승희와 그의 가족에게 주님의 은총을 기원하며, “우리는 모두의 죽음을 공평하게 슬퍼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 사랑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사랑, 그 사랑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터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내 안에 사랑이 제대로 작동하면 두려움은 사라지는 법입니다. 또한 사랑 앞에서 분노도 사라지는 법입니다. 앞에서 분노나 두려움이 큰 힘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자신이 깜깜한 밤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나타나면 그런 것들은 대낮의 촛불처럼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분노나 두려움에 빠져 있다면, 지금 자신이 사랑에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알아차림은 분노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과 똑 닮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 무한히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 마음은 정확히 말해서 바른 마음입니다. 그런데 바른 마음 위에 그른 마음이 있습니다. 그른 마음이 바른 마음을 위에서 가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른 마음을 걷어내면 바른 마음이 나타나고, 그러면 그른 마음에 가려져 있던 사랑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바다에 비유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닷속 얕은 곳은 그른 마음이고, 거기서 더 내려가면 바른 마음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른 마음을 얕은 마음, 바른 마음을 깊은 마음이라고 표현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얕은 마음 상태이면 분노나 두려움으로 살게 되고, 깊은 마음 상태이면 사랑으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보면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꼭 얕은 마음을 거쳐야만 깊은 마음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와 아래에 있는 얕은 마음과 깊은 마음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일 뿐입니다. 깊은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만 우리에게 얕은 마음을 선택하는 매우 오래되고 뿌리 깊은 습관이 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거의 자동적으로 얕은 마음을 선택할 뿐입니다. 그 선택을 깊은 마음으로 바꾸겠다는 용의를 내면 단박에 깊은 마음 상태가 됩니다.

  그 말은 분노나 두려움이 우리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따라서 깊은 마음으로 바꾸면 깊은 마음에 무한히 내장되어 있는 사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곧 분노나 두려움을 내가 선택하듯이 사랑도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상황 때문에 분노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얕은 마음을 선택했기에 분노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랑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일한 상황에서 분노나 두려움을 선택할 수도 있고,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겁니다. 분노나 두려움 그리고 사랑의 원인은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선택하게 되면 분노나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런 상태로 계속 살면 좋습니다. 하지만 뿌리 깊은 습관 때문에 우리는 다시 얕은 마음을 선택하여 분노나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관건은 습관을 바꾸는 일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형성된 그 습관을 바꾸는 일은 퍽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도움을 요청하는 겁니다. 수시로 “내 안에서 사랑이 샘솟게 하소서.”라고 요청하는 습관을 들이면 참 좋습니다. 성령의 도움에 의지하여 깊은 마음을 선택하는 습관이 뿌리내리게 되면, 우리는 분노와 두려움을 졸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형제에게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여정을 여러분이 염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여정을 성령께서 기쁨으로 인도하실 터입니다. ❉

주님,
우리 대부분은 촛불에 의존하여 깜깜한 밤의 상태로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분노와 두려움을 수시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 국면에서 수시로 두려움이 올라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깜깜한 밤의 상태임을 증명해줍니다.
자신이 두려움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코로나 국면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음을 알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사랑을 선택하라고 청하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모습 그대로 사랑과 평화로 살아가기를 청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청에 응답하기를 원하지만 얕은 마음에 있는 에고가 방해합니다.
뿌리 깊은 습관을 무기로 하여 깊은 마음 선택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성령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오니
성령의 도움으로 사랑을 선택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겨나게 인도해 주옵소서.
사랑에 의해 두려움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자주 경험하게 도와주옵소서.
사랑의 힘과 두려움의 힘이 정말로 태양과 촛불의 관계와 같음을,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성경 말씀이 사실임을 체험으로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름답고 행복한 삶 살아가게 축복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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