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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모든 일은 아버지의 일 (창49:1-28)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하기 위해 건강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더니,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삶을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에 표현 못 한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아실 겁니다. 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인 회관에 적혀 있는 작자 미상의 글입니다. 이 글에서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에는 힘과 건강과 부유함과 성공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필요했던 것은 연약함과 병과 가난과 실패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셔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고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때가 되면 필요한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때에는 힘과 건강과 부유함과 성공을 주실 수 있지만, 적어도 그때에는 연약함과 병과 가난과 실패가 필요했던 겁니다. 물론 그것들의 목적이 있습니다. 겸손 배우기,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지혜로워지기, 뽐내지 않기입니다. 연약함과 병과 가난과 실패는 그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언젠가 그 목적이 이뤄진다면, 혹은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힘과 건강과 부유함과 성공을 주실 겁니다.

  구약의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전3:1-7) 이 말씀을 나에게 필요한 것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내 수준과 형편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달라지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때에 따라 무엇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확히 아십니다. 다시 말해서 때에 따라 무엇이 내게 가장 알맞은지를 아십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자신의 소원 모두 들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비로소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킨 결과입니다. 비록 표현은 못 했지만,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킨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져야 할 자세를 이 글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상을 전제로 하여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열두 아들을 불러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유언을 전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그는 아들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축복하였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베냐민에 대한 유언에서 “베냐민은 약탈하는 이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축복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다와 요셉에게 한 유언만이 제대로 된 축복이었고, 나머지 열 명에게 한 유언은 당사자에게 기분 좋은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축복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표현을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유언하였다.”로 이해하면 될 거 같습니다. 유언의 내용이 하나하나에게 알맞은 건 사실인 듯 보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알맞다’는 말을 국어사전은 ‘딱 들어맞아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다’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나 신발에 치수가 있습니다. 자기 치수보다 크거나 작은 옷을 입으면 우스꽝스러울 겁니다. 또 자기 치수보다 크거나 작은 신을 신으면 매우 불편할 겁니다. 자기 치수에 딱 들어맞는 곧 알맞은 옷을 입거나 알맞은 신을 신어야 합니다.

  옷이나 신발의 치수가 자신에게 알맞아야 하듯이, 우리 삶의 전체 내용에서도 알맞음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들 하나하나에게 알맞게 유언한 것입니다. 야곱도 자기 아들들에게 그리했는데, 우리의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은 오죽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아시고, 그래서 현재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아십니다.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당신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알맞게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하나님께 때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알맞은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겁니다.

  북유럽 어느 시골교회에 사람 크기만 한 예수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 동상 앞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문지기가 예수님이 서 계신 곳에 자기가 한번 서 있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 소원을 말하며 여러 날 기도드렸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하도 소원을 말하니 딱 하루만 너와 자리를 바꾸겠다. 그런데 나와 한 가지 약속을 해야 한다. 너는 누가 와서 어떤 행동을 하든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말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문지기는 절대 침묵하겠다고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리하여 문지기가 예수님 동상이 되고 예수님은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동상으로 변한 문지기에게 첫 번째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아주 부자였고 도박을 즐기는 자였습니다. 자기가 도박을 하러 가는데 많이 딸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소원이었습니다. 한참을 기도한 부자가 갔습니다. 그런데 돈다발이 들어 있는 가방을 깜박하고 놓고 나갔습니다. 문지기는 가방을 놓고 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예수님과 한 약속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조금 후에 몹시 가난한 농부가 들어 왔습니다. 자기 아내가 중병으로 누워있는데 치료비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도와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농부가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려다가 돈 가방을 보았습니다. 농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린 후 돈 가방을 들고 나갔습니다. 문지기는 그 돈 가방은 주인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예수님과 한 약속 때문에 참았습니다. 세 번째로 기도하러 온 사람은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청년이었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청년이 기도를 마쳤을 때, 갑자기 예배당 문이 활짝 열리더니 돈 가방을 놓고 간 부자가 들어왔습니다. 돈 가방이 없는 걸 확인한 부자는 다짜고짜 기도하는 청년의 멱살을 잡고 돈 가방을 내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청년은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하면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였지만, 이미 분이 날 대로 난 부자는 청년을 이끌며 경찰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청년은 자기는 지금 바로 가지 않으면 배를 탈 수가 없다고 하면서 경찰서에 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것을 본 문지기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배를 타게 되었고, 부자는 농부한테 가서 돈 가방을 찾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니 당장 내려오너라.” 그러자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잘못한 일은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아서 평화를 이루었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개입하지 않고 침묵했으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걸 모르고 있다. 부자는 그 돈을 어차피 도박장에서 다 날릴 예정이었느니라. 그런데 그 돈이 농부에게 갔더라면 농부의 아내를 살릴 수 있었지. 더욱 큰 잘못은 청년의 문제다. 청년은 네가 그냥 두었더라면 배를 타지 못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네가 개입해서 배를 타게 되었고, 그 배가 바다에서 침몰하여 죽게 되었느니라. 내가 침묵으로 일하는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가장 알맞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메시지입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알 수 있는 문지기가 일을 그르친 겁니다. 자기 딴에는 좋은 일을 한다고 약속까지 어겨가면서 나섰지만, 결국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들었고 또한 청년을 죽게 한 것입니다. 상징적인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우리가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러니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내맡기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걸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거라는 사실을 당장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참 지나서 보면 가장 알맞은 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십니까? 과거에 어떤 일로 인해 몹시 힘들었는데, 지나서 보니 그게 귀한 은총의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 말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라는 바리새파 사람에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이 늙었는데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육적인 의미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곧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비롯되어 기독교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이 중요한 교리가 되었습니다. 흔히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그 교리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게, 저는 재작년 8월에 뇌종양 수술을 받고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두 살 어린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살 아이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몸에 약한 면이 있는 것을 노화로 인한 현상이 아니라, 아직 두 살 아이라 약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건강해지리라고 믿는 겁니다. 노화와 정반대 길을 걸을 거라고 믿는 겁니다.

  저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침대에 엎드려 두 손을 모으고 5분 정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가 두 살 아이인지라 아무것도 모름을 알고, 모든 것을 주님께 물어서 행하고 모든 결정을 주님께 내맡기게 하옵소서. 또한 판단의 유혹을 받는 순간 아무것도 모름을 알아차려, 판단 대신 축복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도 몽땅 주님께 내맡기며 미리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내맡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입니다. 진정 내맡기면 그리도 편하건만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하겠다고 나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면 내맡김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 당면한 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 건강 문제, 내 돈 문제, 내 관계 문제, 내 직장 문제, 내 가족 문제, 내 미래 문제 등 내 일 같아 보이는 그 모든 일이, 사실은 아버지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 생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일 같아 보이는 아버지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께 내맡기는 겁니다. 아버지의 일을 왜 내가 처리하겠다고 나서는 겁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입니다. 그래서 낭패를 당한 일이 수없이 많은데 왜 계속 아버지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하여 나서는 겁니까? 이 일은 아버지 당신의 일이고, 아버지가 가장 알맞게 처리하실 줄 믿고 아버지께 내맡기는 겁니다.

  운전하며 가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끼어듭니다. 알맞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귀한 물건을 잃어버렸습니다. 알맞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직장에서 진급에 실패했습니다. 알맞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병에 걸렸습니다. 알맞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 밖에도 내가 원치 않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알맞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겁니다. 주어진 그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황의 진행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말입니다. 더 나아가 미리 감사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내게 가장 알맞은 걸 주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모든 걸 내맡기는 삶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걸어가는 삶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미리 감사한 대로 감사한 일을 자주 만나 기쁨으로 이어지는 삶 되시기 바랍니다. ❉

주님,
나는 지금 나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한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게 필요한 것과 아주 다릅니다.
내 일처럼 보이는 모든 일이 실은 아버지의 일임을 알고
아버지가 그 일들을 처리하실 수 있도록 내맡기게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께 모든 걸 내맡길 때 하나님은 내게 필요한 걸 주십니다.
내게 가장 알맞은 걸 주십니다.
내게 진정으로 유익한 걸 주십니다.
그러니 때로 원하지 않는 게 주어졌을 때 그게 내게 가장 알맞음을 알고
기꺼이 그걸 받아들이게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이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원하지 않는 게 주어졌을 때 미리 감사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그 감사로 인한 결실을 기쁨으로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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