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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사랑 가득한 신뢰 (창50:15-26)


  기차 안에서 책을 보던 한 승객이 귀여운 여자아이를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좌석 사이로 뛰어다니며 다른 승객들에게 말을 걸거나 자기 인형을 자랑했습니다. 그 승객은 읽던 책을 내려놓고 아이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누구와 함께 이 기차를 타고 가는지 알고 싶었던 겁니다. 객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여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기차가 어둡고 긴 터널 안으로 들어섰고 객실 안 실내등이 깜박거렸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복도 맨 끝에 앉아 있는 한 남자에게 쏜살같이 달려가 그의 팔에 풀썩 안겼습니다. 그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박에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는 언제라도 위험이 느껴지면 달려가서 안길 수 있는 아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심하고 좌석 사이로 뛰어다니며 승객들과 어울릴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하늘 아버지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와 함께 인생 여행을 한다면, 그 인생은 희망으로 활기차고 관용과 사랑을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오늘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야곱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이집트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요셉이 자신들에게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남겼는데 아우님께 전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곧 형들이 몹쓸 짓을 했지만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우님이 자신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말을 전해 듣고서 울었다고 합니다. 요셉은 왜 울었을까요?

  요셉은 17년 전 이미 진심으로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7년 동안 형들의 식솔들까지 이집트 땅으로 이주하게 하여 풍족하게 살도록 돌봐주었습니다. 그런데 형들은 하나님에 대한 굳은 믿음에서 비롯된 요셉의 용서를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극한 은혜를 받았건만 여전히 요셉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요셉은 자신의 진심을 믿어주지 못하는 형들에 대해 심한 허탈감이나 낭패감 같은 것을 느꼈을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런 기분이 들어 울음이 나왔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의 울음에는 쓰라린 마음이 배어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형들이 요셉의 보복 공격을 두려워하는 모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형들의 두려움이 심층적 차원에서 볼 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사실을 바로 이해해야 세상에서 느끼게 되는 다양한 두려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열립니다.

  오늘은 형들이 요셉의 진심을 믿어주지 못하는 모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형들의 믿어주지 못하는 것도 심층적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심층적 차원에서 볼 때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믿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단어를 바꿔서 표현하자면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하나님의 집을 떠나온 것이 하나님을 공격한 일이고,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받아들여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곧 자신은 하나님을 공격한 어마무시한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죄인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깊은 무의식에서 우리는 자신을 불신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무의식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보복 공격을 할 거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생각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곧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을 불신하고 또한 하나님을 불신합니다. 그것은 형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집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의 진심을 믿어주지 못하는 것도,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신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거의 전 인류가 자기 불신과 하나님 불신과 그로 인한 형제 불신으로 살아갑니다.

  이 세 종류의 불신이 가져다주는 폐해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자기 불신은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 불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외면하게 합니다. 그 결과 세상의 공격에 노출되어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셋째로 형제 불신은 형제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형제도 나에게 보복 공격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서로 공격을 주고받아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요한 과제는 신뢰입니다. 자신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모든 형제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럼 세 종류의 신뢰를 확립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방법입니다.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하나님을 공격한 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에고가 만들어낸 거짓입니다. 따라서 그 거짓된 생각을 참된 생각으로 바꾸면 됩니다. 참된 생각은 내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분의 순결한 자녀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아버지 집을 떠나왔을지언정, 여전히 나는 천국의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그분의 소중한 자녀입니다. 그것이 나의 참 정체성입니다.

  한편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을 똑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깊이 신뢰하십니다. 만약 당신의 창조물을 신뢰하시지 않는다면, 당신이 신뢰할 수 없는 존재를 창조하신 셈이 됩니다. 하나님 스스로 당신의 창조 능력을 신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이 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과 권능으로 창조하신 창조물을 신뢰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비록 내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그 실수를 가볍게 용서하시고 나를 신뢰하십니다. 언제나 사랑 가득한 신뢰로 나를 바라보십니다. 따라서 나의 참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심을 알아 나를 신뢰하는 겁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복 공격을 할 거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생각 역시 에고가 만들어낸 거짓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로부터 영원토록 나를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에고의 거짓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백만 배, 천만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신뢰하는 겁니다. 맨 처음에 여자아이가 위험이 느껴졌을 때 아빠 품에 풀썩 안긴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아빠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똑같이 우리도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권능을 신뢰하는 겁니다.

  셋째 모든 형제에 대한 신뢰를 확립하는 방법입니다. 사실 이는 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부정적인 면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난폭하고 어리석고 거짓된 행동을 일삼고 악하기조차 합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신뢰한다는 말입니까? 형제 신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 자아의 실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집니다. 거짓 자아와 참 자아입니다. 거짓 자아는 에고의 인도를 따르고, 참 자아는 성령의 인도를 따릅니다. 난폭하고 어리석고 거짓된 행동을 일삼고 악하기조차 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거짓 자아입니다. 거짓 자아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아니, 신뢰해서도 안 됩니다. 잘못하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뢰하시는 것은 우리의 참 자아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거짓 자아가 실수해도 참 자아를 사랑하시고 신뢰하시는 겁니다. 따라서 형제를 신뢰해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형제의 참 자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형제의 부족한 행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의 내면에 있는 참 자아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대하는 겁니다. 그에게서 에고의 작동을 넘겨보고, 그의 안에 있는 성령을 보면서 그를 대하는 겁니다. 곧 그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의 안에 있는 성령을 신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믿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믿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다.”는 말을 보았습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제3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곧 그의 내면에 있는 참 자아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그의 거짓 자아로 인해 나타나는 부정적 행위에 대해 적절히 반응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평소 거짓을 일삼는 사람이 무언가를 제안했을 때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불신을 표현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불신은 존재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또한 행위 차원에서 지금은 불신으로 반응하지만, 언제가 그가 참 자아를 사용할 날이 올 것에 대한 깊은 신뢰로 그를 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불신에는 사랑이 없지만, 존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불신에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존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행위 차원에서 불신을 표현할 때는 그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 경험으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이상으로 세 가지 신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역시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나 자신에 대한 신뢰 그리고 모든 형제에 대한 신뢰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또한 세상을 신뢰하는 자세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을 신뢰하는 자세로 살게 되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빨간 세상과 구분되는 파란 세상입니다. 빨간 세상은 빨간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고, 파란 세상은 파란 마음에서 비롯되는데 신뢰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한 아가씨가 자기가 딴 앵두를 팔려고 어떤 아주머니 집에 찾아갔습니다. 아주머니는 사겠다고 하면서 가격을 물었습니다. 아가씨는 한 컵에 1,000원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열 컵을 사겠다며 통을 주방으로 가져가서 열 컵을 덜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앵두가 든 통을 자기가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앵두를 덜어내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이, 그 집 뜰의 새장 안에 들어 있는 새를 보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들어와서 내가 사는 것보다 앵두를 더 많이 덜어내는지 지켜봐야 하잖아. 내가 속일지 모르잖아.” 그러자 아가씨는 밖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전 걱정 안 해요. 더 가져가 보았자 나쁜 것을 가져가실 테니까요.” “나쁜 것을 가져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혹시 아주머니가 더 덜어내신다 하더라도 그게 제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러나 아주머니는 도둑이라는 이름을 가져가게 되겠지요.”  

  저는 아가씨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여유로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아주머니가 조금 더 가져간다 하더라도 그게 아주머니에게 손해되는 일로 여깁니다. 곧 아주머니가 손해를 보지 자기가 손해 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가씨는 아주머니가 앵두를 더 가져가든 말든 관심이 없습니다. 혹시 조금 더 가져가더라도 자신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아주머니가 앵두를 덜어내는 동안 밖에서 새들과 어울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겁니다. 이러한 아가씨의 모습에서 ‘이러든 저러든 OK’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언제나 모두에게 알맞은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사는 거 같아 보입니다. 그것은 아주머니가 더 가져가는 선택을 하더라도 허용하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허용은 바로 아주머니에 대한 존재 차원의 신뢰와 잇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파란 마음으로 파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과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위험이 느껴졌을 때 쏜살같이 달려가서 아빠 품에 풀썩 안긴 여자아이가 가진 아빠에 대한 깊은 신뢰, 그런 신뢰를 하나님께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신뢰하고 모든 형제도 깊은 신뢰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신뢰에서 이러든 저러든 OK이고, 언제나 모두에게 알맞은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안전하고 평화로운 파란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주님
사랑과 신뢰는 동전의 양면 관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또한 나를 신뢰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모든 것을 그분께 내맡기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인생 여행을 펼쳐갈 때
희망으로 활기차고 관용과 사랑을 축복받은 인생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그리고 모든 형제에게 적용하여 살아가기 바랍니다.
이러든 저러든 OK이고,
언제나 모두에게 알맞은 일이 일어난다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파란 세상의 주인공으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는 복된 삶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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