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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순한 존재 (롬12:10-14)


  갑돌이가 죽어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뭐든지 원하면 척척 이루어집니다. 삼겹살을 먹고 싶어 하면 턱 나옵니다. 자연산 회를 원하면 금방 앞에 차려집니다. 술도 고급 위스키, 고급 꼬냑, 고급 포도주 등 원하는 대로 나옵니다. 또 고급 승용차, 궁궐 같은 집, 최고급 오디오 등 뭐든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여자를 원하면, 000보다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나서 시중을 듭니다. 갑돌이는 자신이 천당에 온 거로 이해하였습니다.

  처음엔 정말 신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차츰 무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니 미치겠는 겁니다. 그래서 ‘천당이 왜 이래!’ 하며 짜증을 냈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세상을 살 때도 고통을 느꼈지만, 여기는 세상을 살 때 느꼈던 고통과 성격이 아주 다른 고통이 계속 이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천사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지금 내가 천당에 있는 거 맞아요?” 그러자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니, 너 지금 지옥에 와 있는 거야.”

  여러분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갑돌이의 처지를 부러워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합니다. 그 사실이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 보면 자신의 바람이, 자신의 욕망이 척척 실현되는 곳은 천당이 아니라 지옥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다스 왕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겁니다. 미다스 왕은 자기가 만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황금이 되는 소원을 가졌습니다. 그 소원이 이뤄지자 미다스 왕은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자기 딸을 만지자 딸마저 황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딸을 몹시 사랑했던 미다스 왕은 평생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미다스 왕과 갑돌이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당은 어떤 곳일까요? 거기는 욕망이 없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욕망이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함 자체로 그윽한 평화를 느끼는 곳입니다. 깨달은 도인들은 그런 경지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많은 바람이 있습니다. 수많은 욕망이 우리 안에서 들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장 비참할 때는 욕망에 집착할 때입니다. 그때 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지만 생겨나는 욕망을 어찌합니까? 성경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약1:15)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겨나는 욕망을 어찌해야 합니까? 욕망을 끊겠다고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그렇다고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을 끊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욕망이 고통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욕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욕망과 소망, 이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대단히 큰 차이를 지닙니다. 그렇다면 욕망과 소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욕망은 ‘가지려는 마음’이고, 소망은 ‘받으려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지려는 마음은 자기 스스로 취하려는 거고, 받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 것입니다. 곧 가지려는 마음은 자신을 통하는 것이고, 받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을 통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욕망과 소망의 차이입니다.

  대개 사람은 이루고 싶은 꿈을 지닙니다. 꿈이 욕망이 될 수도 있고, 소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꿈을 자신을 통해 이루려 하면 욕망이 됩니다. 그것은 가지려는 마음입니다. 또한 거기에는 집착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꽉 죄는 마음 상태입니다. 그러나 꿈을 하나님을 통해 이루려 하면 소망이 됩니다. 그것은 받으려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이뤄주시면 받으려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헐렁한 마음 상태입니다.

  욕망과 소망의 차이를 다시 정리해 봅니다. 가지려는 마음이고, 받으려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통한 길이고, 하나님을 통한 길입니다. 자기 집착이고, 하나님께 내맡김입니다. 꽉 죄는 마음이고, 헐렁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내맡김을 ‘순명’이라고 말합니다. 순명은 운명에 순응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하나님의 주재에 내맡기는 겁니다. 그 운명의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내용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일 거로 이해하며, 자신에게 알맞은 거로 이해하며,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곧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내맡기는 것이 순명입니다.

  저는 ‘순하다’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까다롭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이겠지요. 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보면 느낌이 좋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저 자신을 압니다. 또한 저 자신이 순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 제게 “그대는 참 순하셔요.”라고 말해준다면 기분이 참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이 순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모질고 독하고 모난 것입니다. 또한 현재 처한 삶의 상황 때문에 순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순명하는 것을 연습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순명할 때 순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넉넉한 여백이 느껴지는 사람, 조금은 바보 같아 보이는 사람, 걸림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많은 바람이 있습니다.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으로 살면 고통스러워지고 추해집니다. 그렇다고 욕망을 끊을 힘은 없습니다. 대신 그 욕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겁니다. 하나님을 통해 이뤄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집착은 아닙니다. 가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주시면 받으려는 마음일 뿐입니다. 그래 이뤄지면 좋겠지만 안 이뤄져도 괜찮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내게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이뤄주실 거고, 아니면 안 이뤄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소망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소망을 이뤄 주십사고 하나님께 기도하되 결과는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그리고 순명하는 겁니다. 만약 안 이뤄지면 그것이 내가 가장 알맞을 거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노년에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며 남긴 세 마디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마음대로 안 되더라”, 두 번째는 “하나님이 당신 마음대로 하시더라”, 세 번째는 “그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만큼의 행복이 있더라”입니다. 참 귀한 통찰입니다. 순명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께 내맡긴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욕망에 집착하여 그걸 이뤄보겠다고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라 그것을 소망으로 바꿔 하나님께 내맡기고, 다만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받을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이 주시면 못 받을 수 없다.”는 진리를 늘 마음에 새깁니다. 그 전제 위에서 꿈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꿈의 성취는 하나님께 내맡기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들아, 나는 방금 나를 찾아온 세 사람을 만났다. 그들 중 둘과는 헤어지지만, 나머지 하나는 아마도 나와 영원히 함께할 거야.” 자식들이 묻습니다. “그 셋이 누군가요?” “첫째는 믿음이었어. 나는 이렇게 말했지. ‘믿음이여 고맙네. 처음 그리스도를 만난 이래로,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준 자네에게 감사하네. 하지만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군. 지금 나는 자네의 도움이 더는 필요치 않은 곳으로 가는 중일세.’ 그리고 둘째는 소망이었어. 그에게도 이렇게 말했지. ‘잘 있게 소망이여. 자네는 늘 내 삶의 활력이 되어주었지. 하지만 이제 자네의 도움이 없어도 될 것 같네. 이제는 소망이 결실로 맺어지는 곳으로 가게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사랑이 찾아왔어. 그에게 이렇게 말했지. ‘어서 오게 사랑이여. 자네도 나의 좋은 벗이었지. 자넨 나와 하나님을, 그리고 이웃들과 맺어 주었다네. 내 모든 순례의 여정을 자네는 기쁨으로 수놓아 주지 않았나.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자네를 뒤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네. 왜냐하면 자네는 나와 함께 저 영원한 나라로 가야 할 테니까 말이야.’ 얘들아, 이 아비가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전해주는 이 이야기를 잘 헤아리며 아름다운 삶을 살 거라.”

  본문을 보십시오. 우선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에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라고 합니다. 우리네 인생의 환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소망으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으로 우리는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소망의 힘이 환난을 견딜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해 줍니다. 기도를 꾸준히 하라고 하는데, 자신의 소망을 위해 기도하고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또한 성도들이 쓸 것을 공급하고 손님 대접에 힘쓰라는 말씀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라고 합니다. 그것도 사랑의 행위입니다.

  여러분, 순한 존재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성격이 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순하게 반응하는, 순명하는 사람으로서의 순한 존재 말입니다. 순한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꿈이겠습니까? 그런 꿈도 하나님께 기도 후 내맡기고 형제 사랑으로 들어가십시오. 순한 사랑을 베푸는 존재로 나아가십시오. 믿음도 소망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인 사랑과 함께 하는 날들이길 바랍니다. 그런 여정을 우리 주님이 축복하여 주실 터입니다. ❉

주님,
가지려는 마음은 자기 스스로 취하려는 거고,
받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면 받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려는 마음은 갖기 위해 때로 형제를 공격합니다.
형제의 것을 빼앗아 갖게 될 수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 말씀의 이치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받으려는 마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대신 형제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형제를 축복하면 결국은 내가 축복받게 됩니다.
그리고 받게 되는 그 축복 속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받으려는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내맡기고 형제를 축복하면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가지려는 마음은 그른 마음 상태이고, 받으려는 마음은 바른 마음 상태입니다.
가지려는 마음은 공격으로 이어지고, 받으려는 마음은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맡기고 순한 존재로서 형제 사랑으로 살아감으로
점점 행복이 깊어지게 인도해 주옵소서.
늘 내 안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사랑을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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