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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지하 3층의 믿음 (막5:21-34)


  오래전에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곧 서늘한 계절이었는데도, 영화가 끝나자마자 수많은 관객이 구내매점으로 몰려가 청량음료를 마신 겁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바람에 북새통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모든 영화관이 예외 없이 말입니다. 이 영화는 아라비아 사막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모래벌판이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곳에서, 주인공 로렌스 소령이 심한 갈증과 허기를 견디면서 인간 의지를 실현해 가는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뜨거운 사막 장면과 주인공의 극한적인 갈증에 매료된 관객들은, 실제로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신체적으로 수분 결핍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심한 목마름을 느껴 청량음료를 찾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주는 현상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이며 신경과학자인 스탠포드대학의 온스타인 박사는, 오랫동안 심신 건강에 대해 연구하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낙천적 성격의 사람은 건강하고 질병에 잘 걸리지 않았다/ 우울한 성격을 가진 심장병 환자는, 흡연하는 환자보다 심장마비가 올 확률이 더 높았다/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나누지 못하는 사람의 사망확률은, 운동 부족이나 고혈압 등의 경우와 비슷할 정도로 높았다/ 절망적인 피부암을 가진 환자들 중 한 그룹에게는 일반적 외과수술만 실시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외과수술 외에 스트레스 관리법, 이완반응법, 심리적 대처 기술 등의 심리적 훈련을 시켰다. 그런데 6주 동안 심리적 훈련을 받은 그룹은, 그 후 6년 동안 사망률이 60%나 줄어들었다/ 종교적 믿음을 가진 심장 절개 수술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생존율이 3배 이상 높았다.”

  마음으로부터 긍정적 힘을 받은 몸과, 부정적 힘을 받은 몸의 상태가 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일체유심조)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몸의 건강입니다. 그래서 운동도 하고 영양제 같은 것도 먹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과 더불어, 마음으로부터 긍정적 힘을 받는 것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으로부터 부정적 힘은 받지 않고 긍정적 힘을 받을 수 있을까요?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로이드는 의식에는 현재의식과 전의식(잠재의식)과 무의식,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재의식은 지금 의식하는 것이고, 전의식은 현재의식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의식은 전의식 아래에 있는 것으로서, 그 내용을 의식으로는 지각할 수 없습니다. 프로이드는 이를 그림으로 설명하였습니다. 물에 큰 얼음덩어리가 떠 있습니다. 그중에서 물 위에 있는 것이 현재의식인데, 우리의 정신 활동 중 극히 일부분만이 의식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하였습니다. 전의식은 물속에 있는 것으로서 현재의식 밑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은 역시 물속에 있는데 전의식 밑에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과 의식을 결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전의식(잠재의식)과 무의식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전의식은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오감을 통해 지각한 것이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의식은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 등이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의식은 잘하면 기억해낼 수 있지만, 무의식은 말 그대로 기억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의식에 대해 프로이드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정확히 설명하셨습니다. 무의식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른 마음의 무의식과 바른 마음의 무의식입니다. 그리고 그른 마음의 무의식에는 태초로부터 전해져온 죄책감과 두려움 등이 있고, 바른 마음의 무의식에는 사랑과 기쁨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은 옆으로 나란히 있는 게 아니라 위아래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그른 마음이 있고 그 아래에 바른 마음이 있는 겁니다.

  이상의 내용을 건물에 비유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건물은 지상에 1층이 있고, 지하에 3층이 있습니다. 현재의식은 지상 1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잠재의식은 지하 1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은 지하 2층과 3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하 2층의 무의식은 그른 마음이고, 지하 3층의 무의식은 바른 마음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지하 3층 바른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른 마음과 바른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하 2층과 지하 3층의 마음이 지상 1층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열두 해 동안 여러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돈만 없애고 상태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라는 사람이 수많은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여인은 그분이 자신의 병도 충분히 고칠 수 있을 거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 예수님의 일행이 지나가는데, 뒤에서 무리 가운데로 끼어들어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여인은 ‘내가 이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나을 터인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여인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무리에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예수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예수님 말씀대로 여인의 믿음 덕분에 병이 나은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도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이 몸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만 하면 병이 나을 거라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마음에 있는 걸까요? 바른 마음입니다. 곧 그 믿음은 자신의 지하 3층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대개 지하 3층에 있는 믿음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런데 지하 2층에도 믿음이 있습니다. 지하 2층에 있는 믿음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믿는 겁니다. 죄인은 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이면서 또한 한계를 지닌 존재를 뜻합니다. 그리하여 본문의 여인처럼 예수님의 옷을 만졌다고 병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기적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하 3층에 있는 믿음은 자신이 하나님의 결백한 자녀라고 믿는 겁니다. 그리하여 본문의 이야기와 같은 터무니없어 보이는 기적이 가능하다고 믿고, 그 결과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지하 2층의 믿음이든 지하 3층의 믿음이든 믿는 대로 경험한다는 점에서 두 믿음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믿느냐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곧 지하 3층의 믿음을 갖는 것이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 시간에 미래와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감정은 불안과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불안을 느끼면, 그것에 걸맞은 미래를 경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해서든지 불안 대신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안 되는 겁니다. 희망을 선택하고 싶은데, 불안한 마음이 내 뜻과 무관하게 나타나서 나를 괴롭힙니다.

  그것을 오늘 설명해드린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불안은 지하 2층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희망은 지하 3층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3층으로 내려가지 못할 때 불안에 시달리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순히 희망을 갖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희망을 갖는 것은 결과이고, 그 원인은 3층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곧 2층에 있으면서 희망을 갖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하 3층으로 내려가게 도와달라고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고요한 시간을 가지며 3층으로 내려가려고 시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하 2층에서 지하 3층으로 내려가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그 내려가는 힘이 강한 사람이 있고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힘이 약한 사람은 내려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선택하고 싶어도 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겁니다. 전생에 마음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은 강한 힘을 타고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고, 대부분은 약한 힘을 타고났습니다. 약한 힘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열심히 마음 훈련을 하면 힘을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훈련 과정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보통 우리는 지하 2층에서 곧 그른 마음 상태로 살아갑니다. 거기서 우선 웃는 예수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지하 3층으로 잘 내려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이어서 엘리베이터 같은 걸 타고 예수님과 함께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걸 연상합니다. 지하 3층에 제대로 도착했다면 바른 마음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희망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꾸준히 마음 훈련을 하여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힘이 점점 강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지하 3층인 바른 마음 상태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결백한 자녀라는 바른 믿음이 점점 커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근본 믿음에서, 희망과 건강과 행복의 열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본문의 여인과 같은 기적의 복된 주인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주님,
자신이 믿는 대로 경험하게 된다고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믿든 믿는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일입니다.
힘을 실어주면 그것이 나의 현실이 되는 것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예컨대 코로나에 걸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코로나가 내게 침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기에 결국 코로나에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니기에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고 굳게 믿으면
곧 코로나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됩니다.
또 미래가 불행을 안겨줄 수 있다고 믿으면
불안해하다가 결국 불행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행복을 안겨줄 거라고 믿으면
희망으로 살다가 결국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의 뿌리에는 근본 믿음이 있습니다.
곧 자신이 죄인이라는 믿음과 결백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입니다.
죄인이기에 코로나에 걸리거나 미래에 불행을 겪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 거고
결백한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안전하고 행복한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른 마음 상태일 때는 죄인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고
바른 마음 상태일 때 결백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그른 마음에서 벗어나 바른 마음으로 내려가는 것이 행복의 관건입니다.
그런데 에고가 바른 마음으로 내려가는 것을 극렬히 방해합니다.
그래서 에고가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바른 마음으로 내려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에고의 손을 뿌리치고 내려가는 힘이 점점 강해지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굳건한 지하 3층의 믿음으로
건강과 안전과 행복을 찬미하는 삶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늘 내 안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돌보아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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