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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나는 모든 것의 일부 (마5:38-39)


  욕심이 무척 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그가 깊은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들이 아무리 열심히 치료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왕궁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병이 나을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 왕자와 신하들을 보내 행복한 사람을 찾아오게 하였습니다. 신하들은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저녁 무렵, 왕자 역시 지친 몸을 끌고 왕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길가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저에게 일용할 약식을 주시고, 이렇게 무사히 지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게 하시니 참 감사합니다.” 왕자는 기뻤습니다. 저렇게 가난한 조건에서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자는 신하들을 시켜 급히 금은보화를 그 사람에게 가져다주고, 그 값으로 속옷을 받아오게 하였습니다. 신하들은 오두막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돌아온 신하들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습니다. 왜 그러냐고 왕자가 묻자 신하가 대답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너무 가난해서 속옷조차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해 들은 왕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가슴을 치며 크게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진 많은 재물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러자 왕의 마음은 참 행복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 왕의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우선 본문을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이 말씀의 취지를 여러분이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 조금 다른 차원에서 이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라고 한 것은 율법의 말씀입니다. 흔히 예수께서 율법의 이 말씀을 부정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율법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율법의 말씀과,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는 성경 말씀이 같은 성격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의 말씀과 카르마의 법칙이 같은 성격입니다. 카르마의 법칙은 선업을 지으면 좋은 결과를 맞게 되고, 악업을 지으면 나쁜 결과를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에게 베풀면 언젠가 자신이 받게 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으면 언젠가 자신의 것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힘에 의해 카르마의 법칙대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법칙은 윤회를 전제로 합니다. 곧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태어나서 죽기를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 법칙에 의해 이번 생에서 악행을 저지르면 이번 생에 고통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생에 고통이 안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평생 악하게 살았는데 호의호식하다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생에서 반드시 업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카르마 법칙의 시스템 안에서 태어나기를 반복하며 윤회의 여정을 이어갑니다.

  만약 내가 과거에 상대방의 뺨을 때렸다면,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상대방한테 내가 오른쪽 뺨을 맞는 상황이 찾아오게 됩니다. 카르마의 법칙이 작동하는 것은 거기까지입니다. 내가 오른쪽 뺨을 맞는 상황까지입니다. 이제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 반응은 카르마의 법칙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나쁜 상황이 찾아오는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 상황에서 반응은 나의 의지대로 선택합니다. 그러므로 나쁜 상황이 오지 않도록 선업을 짓는 일도 필요하지만, 악업을 지어 나쁜 상황이 찾아왔을 때 바른 반응을 하는 것이 또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바른 반응인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크게 보아 공격과 사랑, 둘 중의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공격과 사랑 중의 하나이고, 상대방도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공격과 사랑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상대방이 내 오른뺨을 때린 것은 그가 내게 공격을 준 것입니다. 그때 나는 공격을 주는 거로 반응하든지, 사랑을 주는 거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오른뺨을 맞았을 때 화가 나서 나도 상대방의 뺨을 때린다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카르마의 법칙을 알아차리고 상대방의 뺨을 다시 때리는 일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 멈춤은 그에게 공격을 주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준 것일까요? 상대방의 뺨을 때리지는 않지만 화가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준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는 공격을 주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공격을 준 것입니다. 행동으로 공격을 주지 않음으로써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가치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차원에서는 여전히 공격을 주는 것입니다.

  왼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은 그의 공격적 행동을 허용하라는 뜻입니다. 허용은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왼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은 확실히 사랑을 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왼뺨을 돌려 대라는 말씀이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상징입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반응하라는 말씀의 상징입니다. 왼뺨을 돌려 대지 않아도 그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굳이 왼뺨을 돌려 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뺨을 맞았는데 어떻게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사랑으로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그 상황을 하늘이 차려준 밥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상황이 카르마의 법칙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화가 날 수 있지만, 하늘이 차려준 밥상으로 해석할 때는 화가 안 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긍정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왼쪽 뺨마저 돌려 댈 수도 있습니다. 곧 사랑하는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왕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왕은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며 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들에게 큰 피해를 안겨주었을 겁니다. 그래서 병이 난 것입니다. 모든 병의 원인이 욕심인 건 아니지만, 욕심의 결과가 병으로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왕의 병도 카르마의 법칙에 의한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에게 나그네를 보내어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너무 가난하여 속옷조차 입을 수 없는 사람, 그런데도 행복한 사람을 왕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왕에게 구원의 기회를 부여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한편 문제를 볼 수 있는 눈을 구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눈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욕심을 철저히 반성하고 재산을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을 주는 모습입니다. 그러자 행복해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왕이 지금 입고 있는 속옷이 행복한 사람의 속옷이 된 것입니다. 결국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카르마의 법칙대로 펼쳐지는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왕처럼 역경 속에서도 사랑의 반응을 선택할 때, 역경을 극복하고 은총에 대한 감사의 찬양을 부르게 됩니다.  

  <파우더>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파우더는 매우 고귀한 마음을 가진, 또한 초능력도 구비한 소년입니다. 그는 가정 사정으로 말미암아 보호시설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닙니다. 어느 날 그 시설을 관리하는 경찰 한 사람이 학생들을 데리고 사냥하러 갑니다. 파우더는 가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 가게 됩니다. 경찰은 총으로 사슴을 쏴서 명중시킵니다. 모두 환호합니다. 그런데 파우더는 죽어가는 사슴에게 다가가서 한없이 슬퍼합니다. 그리고는 한 손을 사슴의 총 맞는 부위에 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경찰의 팔을 움켜쥡니다. 그러자 경찰은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모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파우더가 죽어가는 사슴의 고통을 고스란히 경찰에게 전한 것입니다. 경찰은 파우더를 통해 전해지는 사슴의 고통을 똑같이 느끼며 고통스러워한 것입니다.

  경찰은 재미로 총을 쏴서 사슴을 죽인 것이지만, 그것이 사슴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업보를 받게 됩니다. 파우더가 초능력을 발휘하여 경찰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카르마 법칙의 작동을 순간적으로 보여준 거로 이해해도 되겠습니다.

  경찰은 그 후로부터 총을 잡지 못합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너무 극심했던 지라 두려움으로 총을 잡지 못하는 겁니다. 그가 진심으로 회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는 동물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파우더로 인한 고통을 겪지 않았다면 그는 계속 재미로 동물 사냥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 악업을 쌓을 것입니다. 따라서 파우더는 경찰이 더는 악업을 쌓지 않도록 막아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우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모든 것의 일부이다.” 모든 것, 곧 고통을 겪는 사람,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 동물, 식물 등 모든 것의 일부로서 나는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우주 만물과 나는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주 만물에 사랑으로 반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카르마의 법칙에 의한 고통을 구원의 기회로 사용합니다. 상대방한테 뺨을 맞는 것과 같은 원치 않는 부정적 사건을 맞았을 때, 그것이 카르마의 법칙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것을 하늘이 차려준 밥상으로 해석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그 사건을 받아들이고 긍정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내 뺨을 때린 상대방에게 사랑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반응하게 되면 영혼이 성장합니다. 따라서 카르마의 법칙에 의한 부정적 사건이 구원의 기회로 사용됩니다.

  내가 사랑으로 반응하였으니, 그것이 카르마 법칙에 의해 복으로 이어집니다. 나를 공격한 사람을 축복하였으니, 그것이 카르마 법칙에 의해 내가 축복받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카르마 법칙 시스템의 주인공으로 살게 됩니다. 마음은 점점 더 평화로워지고, 또한 점점 좋은 일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기분 좋은 그 길을 잘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

주님,
나는 모든 것의 일부입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 동물, 식물 등 모든 것의 일부입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과 나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내 안 깊은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 사랑을 꺼내어 우주 만물에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나는 천국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그 복된 길 잘 걸어가게 하옵소서.
늘 내 안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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