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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막6:30-34)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먹을 것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속반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는 포장마차를 뒤집어엎어 버렸습니다. 계란이 깨지고, 베지밀 병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도넛들이 아무렇게나 길바닥에 처박혔습니다. 단속반에게 사정도 하고 매달려 보기도 하던 포장마차 주인은,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땅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단속반은 포장마차에 있던 음식물을 차에 실으려고 분주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소리쳤습니다.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하는 짓일 텐데 이제 그만 괴롭혀요.”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참을 주저하다 나선 모양이었습니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 중 몇몇이 조그만 목소리로 그 아주머니의 말에 동조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에 놀랐는지 단속반의 손길이 좀 멈칫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한 50대 아저씨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길바닥에 뒹굴던 베지밀 세 병을 주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멍하니 서 있던 포장마차 주인의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밀어 넣고 돌아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까 소리쳤던 아주머니가 우유 몇 봉지를 집어 들고 주인에게 돈을 지불했습니다. 이어서 아기를 업은 새댁이 삶은 계란 몇 개와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도넛 몇 개를 샀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줄을 지어서 사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주인의 어깨를 한참 두드려 주다 가기도 했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의 가슴에 따스한 봄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세상이 살벌하고 험악한 것 같아도, 한편 이런 아름답고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간간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처럼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 봅니다.

  갑돌이가 “인생은 악하고 추한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또한 갑순이가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사실입니다. 갑돌이와 갑순이 중에서 누가 옳을까요? 둘 다 옳습니다. 인생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기 때문입니다. 양자물리학자들이 말합니다. 우주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삶은 자기가 믿는 대로 경험하게 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갑순이의 입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갑순이가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할 때, 그것이 인생 전체가 아름다움으로 도배되어 있다는 뜻일까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모습도 아름답고, 누군가 큰 재난을 당하는 모습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 어둡고 부정적인 일인 줄 알지만, 한편 밝고 긍정적인 일도 많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밝고 긍정적인 일들을 더 눈여겨보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어둡고 부정적인 일들의 틈새를 여유롭게 비집고 들어가서, 밝고 긍정적인 일들을 만나는 기술이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고백하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인생은 객관이 아니라 주관이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부정적인 일과 긍정적인 일에 대한 감정의 강도(强度)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편의상 이를 수치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정적인 일에 대한 수치를 –로 표시하고, 긍정적인 일에 대한 수치를 +로 표시하겠습니다. A라는 부정적 일에 대해 갑돌이는 –10의 강도로 지각하는데, 갑순이는 –1의 강도로 지각하는 겁니다. 이는 A라는 부정적인 일에 대해 갑돌이는 아주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갑순이는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B라는 긍정적인 일에 대해 갑돌이는 +1의 강도로 지각하는데, 갑순이는 +10의 강도로 지각하는 겁니다. 이는 B라는 긍정적인 일에 대해 갑돌이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갑순이는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A라는 부정적인 일과 B라는 긍정적인 일을 함께 만났을 때, 두 사람의 감정 상태를 계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갑돌이는 –10+1=-9의 감정으로 지각하고, 갑순이는 –1+10=+9로 지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동일한 상황에서 갑돌이는 –9 강도의 부정적 감정이 되고, 갑순이는 +9 강도의 긍정적 감정이 됩니다.

  이상을 전제로 하여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어느 날 갑순이가 부정적인 일을 5개 만나고, 긍정적인 일을 1개 만났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1×5)+10=5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갑순이에게 긍정적인 일의 범위는 아주 넓습니다. 누군가의 친절한 말 한마디, 파란 하늘, 새소리, 예쁜 꽃, 시원한 바람,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 등 이 모든 것을 만날 때마다 긍정적인 일로 지각합니다. 또 “It’s good”이라고 말할 때마다 긍정적인 일을 만난 셈이 됩니다. 그래서 갑순이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부정적인 일을 5개쯤 만나고, 긍정적인 일을 20개쯤 만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걸 계산해 보면 (-1×5)+(10×20)=195가 됩니다. 한편 갑돌이에게는 갑순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일의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들을 죄다 부정적인 일로 지각합니다. 그래서 갑순이와 동일한 조건에서 하루를 지내고 나서 갑돌이는 –195쯤 됩니다. 그 결과로 갑돌이는 “인생은 악하고 추한 거야”라고 생각하게 되고, 갑순이는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양극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중간쯤 어디에 있을 겁니다. 갑돌이에 가까운 사람이 있고 갑순이에 가까운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어느 쪽에 가까울 거 같습니까? 우리의 1차 목표는 갑순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갑순이를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볼 때마다 희망으로 가슴이 박동하고, 하루에 “It’s good”이라고 말하는 횟수가 30번을 넘고, 진심으로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경우는 다양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타인을 연민과 사랑으로 대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앞의 포장마차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토록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그분이 사람들을 깊은 연민과 사랑으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일으키신 수많은 기적은 대부분 그런 연민과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도들을 사람들에게 파송하셨습니다. 사도들이 그 일을 마치고 예수께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과 가르친 일을 다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시고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워낙 사람이 많아 쉴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도들과 예수님이 쉬려고 외딴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곳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 무리를 보시고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몹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하여 쉬려던 것을 포기하시고 다시 그들을 가르치시고 또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좀 쉬려고 외딴곳을 찾아갔다가 포기하는 마음을 헤아려 보십시오. 연민과 사랑, 그것이 예수님의 일관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갑돌이처럼 세상이 거친 거라고 지각하는 사람은, 자신도 세상에 대해 거칠게 반응하게 됩니다. 갑순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거라고 지각하는 사람은, 자신도 세상에 대해 아름다움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퇴근길 지하철역 입구 한 귀퉁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한 청년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여인이 그 청년의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여 다가가 물었습니다. “학생, 어디 아픈 데 있어요?” “저, 팔 한쪽을 삔 것 같아요.” 청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팔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빨리 병원에 가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잠시 머뭇거리다 딱한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올라왔는데 일이 잘 안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다 팔마저 다치게 되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지갑을 도난당했다는 겁니다. 여인은 청년이 가여웠습니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우선 간단히 치료받고 시골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만, 5만 원만 빌려주시면 내려가는 즉시 돈을 부치겠습니다.” 여인은 흔쾌히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고는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문득 여인은 청년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청년으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자기가 청년으로부터 사기당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묘하게 돈을 뜯어 가는 행태에 대해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심란해졌습니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불을 끄고 누워서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습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남편이 물었습니다. “당신 무슨 일이야?” 평소 남편은 쩨쩨하다 싶을 정도로 알뜰했습니다. 그런 남편이라는 걸 알기에, 여인은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5만 원을 주었다는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여인에게 집요하게 물었고, 여인은 할 수 없이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남편은 퉁명스럽게 “잊어버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일찍 출근했습니다. 여인도 출근 준비를 하다, 화장대 위에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이 놓여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모두 5만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낯익은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여보, 난 그까짓 5만 원보다, 그 일로 당신이 천사 같은 마음씨를 잃어버릴까 봐 더 안타까워. 이 돈은 당신의 따스한 마음씨를 되찾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 청년을 대신해서 내가 갚는 거야.”

  여인은 갑돌이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갑순이 같은 마음을 가진 남편 덕에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을 겁니다. 우리가 갑순이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가도, 여인과 같은 사건을 경험하게 되면 갑돌이로 바뀔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중요합니다. 그때 남편의 자세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그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호의를 베풀고 그걸 즐기는 겁니다. 베풀게 인도하셨음을 알고 감사하는 겁니다. 그것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느냐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문제입니다. 호의에 대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겁니다. 나의 순수한 호의가 상대방의 반응에 물들지 않는 겁니다. 갑순이가 갑돌이로 바뀌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전하고, 그 결과는 몽땅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걸려 넘어집니다. 여기서 걸리지 않고 사뿐히 넘어가는 것, 이것이 영혼의 자유를 위해 퍽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수준이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의 호의를 상대방이 악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화가 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화나 서운함을 붙잡고 있지 말고 역시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런 상황도 하늘이 차려준 밥상으로 인식하며 “It’s good”이라고 외치는 겁니다. 만약 “It’s good”이 안 나오면, 우선 “It’s ok”라고 말하는 겁니다. “It’s ok”는 괜찮다는 뜻인데, 이 말을 하면 마음이 누그러집니다. 그렇게 누그러진 상태에서 “It’s good”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어둡고 악한 세상의 한가운데서도 인생을 아름다움으로 지각하는 사람, 그리하여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이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움을 꽃피어내는 여정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

주님,
양자역학자들은 우주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되는 거라고 합니다.
세상이 악하고 추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세상을 보고 싶은 겁니다.
왜 그런 세상을 보고 싶은 걸까요?
무의식 차원에서 자기 내면이 악하고 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은 죄인이기에 악하고 추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무의식 차원에서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 겁니다.
나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바른 믿음을 갖기 원합니다.
그 바른 믿음으로 인해 아름다운 세상을 보기 원합니다.
그 원함대로 아름다운 세상을 지각하고 경험하며  
‘오늘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볼 때마다 희망으로 가슴이 박동하고
하루에 “It’s good”이라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가기 원합니다.
하여 점점 행복감이 깊어가는 여정되기 원합니다.
늘 내 안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사랑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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