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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쁨 (눅15:11-24)


  집이 몹시 가난하여 장난감 하나 없이 지내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 집에 가 보면 장난감이 넘칩니다. 그런 장난감을 볼 때마다 부러움이 올라왔습니다. 장난감을 하나 갖는 것이 이 아이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이 아이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어떤 사람이, 아이에게 아주 멋진 장난감을 선물하였습니다. 그 선물을 받아들고 아이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이처럼 예상치 않은 아주 기쁜 일을 만나게 되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어쩔 줄 몰라 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실 그 말은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무 좋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 걸 관용구라고 합니다. 예컨대 ‘비행기를 태운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칭찬하거나 치켜세울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입이 무겁다’라는 말도 관용구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용적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쩔 줄 몰라 한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관용적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본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실제로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합니다. 알아야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기 위해서 계속 공부하며 배우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아는 상태, 그것을 ‘어쩔 줄 안다’라고 표현해 보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급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쩔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상급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어쩔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어쩔 줄 모르면 인생이 답답할 겁니다. 반면에 어쩔 줄 알면 인생이 가뿐할 겁니다. 그런데 어쩔 줄 아는 것보다 더 높은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입니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실 겁니다. 제가 말실수를 한 거로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니, 실수가 아니라 정확히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좋아서, 미칠 정도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 관용적인 의미입니다. 여러분도 더러 그런 경험을 해 보셨을 겁니다. 그것을 고급 상태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어쩔 줄 모르는 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급인 어쩔 줄 모르는 것인데 그것은 문자 그대로 모르는 상태입니다. 또 하나는 고급인 어쩔 줄 모르는 것인데 그것은 관용적 의미입니다. 그리고 고급인 어쩔 줄 모르는 것은, 상급인 어쩔 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하급, 상급, 고급이 있다는 겁니다.

  하급과 상급, 이 둘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고급은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말미암은 상태입니다. 그것은 초월을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하급과 상급의 차이와 상급과 고급의 차이는 성격이 다릅니다. 하급과 상급의 차이가 양적 성격이라면, 상급과 고급의 차이는 질적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닫혀 있습니다. 그리고 열쇠 구멍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합니다. 마침 옆에 열쇠 꾸러미가 있습니다. 열쇠가 총 스무 개쯤은 되어 보였습니다. 그는 열쇠를 하나씩 구멍 속에 넣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통 맞는 게 안 나타나는 겁니다. 차츰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개가 남았습니다. 이건가 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열쇠도 맞지 않는 겁니다. 그는 절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문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몸으로 문을 밀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이 확 열리는 겁니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던 겁니다. 그냥 닫혀 있을 뿐이었던 겁니다. 닫힌 문을 잠긴 문으로 알고 온갖 열쇠로 열려고 헛고생을 하였던 겁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은 방금 말씀드린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열쇠로 그 문을 열려고 합니다. 열쇠로 열리지 않을 때 매우 답답할 겁니다. 그것이 어쩔 줄 모르는 상태입니다. 만약 열쇠로 열게 되면 기분이 가뿐할 겁니다. 그것이 어쩔 줄 아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열쇠로 열리지 않다가, 무심코 문을 밀자 열리게 되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각각 하급, 상급, 고급 상태입니다. 고급 상태를 바로 은혜라고 합니다.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열쇠로 열려는 자기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냥 초월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은혜의 문은 열쇠로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은총의 문을 여는 일에는 하급 상태와 고급 상태만 있을 뿐입니다. 곧 열쇠로 열리지 않아 답답한 상태와, 무심코 문을 밀자 열려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어렵게 어떤 방법을 터득하여, 보물찾기하듯 고생 끝에 찾아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바라보면 보이는 것이고, 그냥 손을 내밀면 잡히는 것이고, 그냥 느끼려 하면 느껴지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지금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려 하지 않고, 손을 내밀려 하지 않고, 느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열쇠로 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은혜의 문은 열쇠로 잠긴 적이 태초로부터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열쇠로 열려는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냥 살짝 밀기만 하면 열립니다. 은혜는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초월적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그 은혜의 문은 살짝 밀기만 하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은 반자동문과 비슷합니다. 자동문은 사람이 다가가기만 하면 저절로 열리고, 반자동문은 버튼을 누르면 열립니다. 그런데 버튼을 눌러도 안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버튼에 설정된 전원이 꺼져 있을 때입니다. 곧 반자동문은 버튼 누름과 전기의 힘이 합쳐져서 열립니다. 그렇듯 은혜의 문은 살짝 밀기만 하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반자동문을 근본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전기의 힘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 문을 밀어도 열리지 않습니다. 사실 열쇠로 열려고 하는 거나 밀어서 열려고 하는 거나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임에서 같습니다. 은혜가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초월적으로 주어진다는 말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은혜의 문은 열려고 열쇠를 찾으려고 헛고생하지 않고 살짝 밀기만 하면 열리는데, 그때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치를 여러분이 마음에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문전걸식을 하는 거지인 겁니다. 동냥 그릇을 갖고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는데, 다른 거지가 자기 동냥 그릇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안간힘을 다하여 빼앗기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깨고 보니 자기는 큰 부자인 겁니다. 악몽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온몸에 땀이 흥건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 부자입니다. 그런데 거지 신세가 된 꿈을 꾸고 있다는 겁니다. 동냥 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하는, 그런 처량한 거지 신세가 된 꿈을 꾸고 있다는 겁니다. 그 꿈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자신이 부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태초로부터 모든 것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탕자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에 여러분이 익숙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이야기에 변형을 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작은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갖고 도회지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아버지 집에서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도회지로 간 것으로 보는 겁니다. 거기서 노력을 기울이면, 아버지 집에서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망상에 빠져서 말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문전걸식하는 거지가 된 것입니다. 동냥 그릇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위험을 맞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용서받을 절차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냥 문제가 풀립니다. 마치 꺼질세라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촛불을 훅 불어 끄면, 찬란한 별빛이 기다리고 있듯이 말입니다. 마치 꼭 움켜쥐고 있는 손을 턱 펴면, 뜻밖의 은총이 기다리고 있듯이 말입니다. 마치 열쇠 꾸러미를 버리고 그냥 문을 가볍게 밀기만 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리듯이 말입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자신이 부자인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 순간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고급 상태로 초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상급인 어쩔 줄 아는 상태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가뿐함을 누리십시오. 하지만 그것이 궁극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급인 초월적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상태를 사모하십시오. 그리하여 모든 것을 다 내맡기고 그저 하나님의 품에 안기십시오. 그리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쁨, 그런 바보스러워 보이는 기쁨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

주님,
우리 앞에 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 문의 이름은 하나님 은혜의 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 눈에는 그 문이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문을 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모르고 그래서 그 은혜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것을 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 눈에는 그 문이 보입니다.
따라서 그 문을 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많은 사람이 열쇠로 그 문을 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문은 열쇠로 열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헛고생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그 문이 그저 가볍게 밀면 열린다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그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초월적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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