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동 로 그 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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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미움에서 감사로 (창49:1-28)


  얼마 전에 <하이에나>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습니다. 김혜수가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김혜수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이자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술 취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결국 김혜수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으로 죽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쉽게 풀려납니다. 그 후에도 지속되는 아버지의 폭력에 김혜수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남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감옥에 보낼 계획을 세웁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김혜수를 때려 김혜수가 바닥에 쓰러집니다. 그때 미리 준비해둔 칼을 쥐고 일어나 아버지를 찌를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납니다. 그때 김혜수는 재빨리 아버지의 손에 칼을 쥐여줍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자기 손으로 붙잡고 아버지가 칼로 자기 배를 찌르게 합니다. 김혜수는 피를 흘리며 쓰러집니다. 아버지는 졸지에 칼로 딸의 배를 찌른 셈이 된 겁니다. 남동생의 신고로 김혜수는 병원에 실려 갑니다. 아버지는 그 일로 30년 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나중에 김혜수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틈만 나면 아버지한테 매 맞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드라마의 김혜수 정도는 아니어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품고 살아가면, 안 그래도 힘든 인생인데 더욱더 힘든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미움은 인생을 힘들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이 아닌 사람을 미워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을 평생 만나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미움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이기 때문에 평생 직간접적으로 안 만날 수 없어서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물론 그 대상이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복이 요셉에게 베풀어질 거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내 베냐민에게 말합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다.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삼키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눌 것이다.” 물어뜯는 이리라고 하였으니 이를 축복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공동번역성경은 ‘약탈하는 늑대’라고 번역하였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베냐민은 방금 전에 아버지가 형 요셉에게 내린 어마어마한 축복의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기한테는 약탈하는 늑대라고 하면서 빼앗은 것을 먹는다고 하니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당연히 못마땅했을 겁니다. 불쾌했을 겁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어머니가 같습니다. 라헬이 낳은 두 아들입니다. 야곱은 두 아내 중에서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야곱은 요셉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미워할 정도였습니다. 성경에 야곱이 요셉을 사랑했다는 말은 나오는데 막내 베냐민을 사랑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베냐민을 사랑하지 않았을 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베냐민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요셉만큼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로 추측해 봅니다.

  베냐민을 끝으로 열두 아들에 대한 유언이 끝났습니다. 배다른 형제들은 생략하고 요셉과 베냐민의 기분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셉은 기분이 무척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베냐민은 실망했을 겁니다. 기분이 나빴을 겁니다. 곧 아버지의 유언을 들은 두 형제의 기분은 정반대였을 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를 편의상 요셉 유형이라고 하고, 후자를 베냐민 유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베냐민 유형의 사람은 자기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겁니다.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고 사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에 대해 긍정적 감정을 갖고 사람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퍽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그를 위한 좋은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방법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째 단계는 거짓된 자아를 버리고 참 자아로서 살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드리기 전에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에 제 카톡 대문에 적혀 있는 “세상 모든 일은 내가 나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는 말에 대해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수업>이라는 책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가 나 자신에게 행한 거라는 말씀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의식 차원에서 해석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의 근본 원인은 무의식 차원에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 그 원리를 머리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원리를 받아들이고 일어난 일에 바르게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카톡 대문에 적어 놓고, 매일 아침 확인하며 일어난 일에 바르게 적용하려고 애썼습니다. 이제는 제법 숙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른 내용으로 바꿨습니다.

  제 카톡 대문에 적혀 있던 그 말을 오늘 우리의 주제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지금 아버지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아버지를 싫어하는 겁니다. 그것을 그 말에 맞춰 표현하자면,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나에게 행한 거라고 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일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의식 차원에서는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일이지만, 무의식 차원에서 보면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일이 되는 겁니다.

  또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아버지도 나를 싫어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를 싫어하게 되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이제 아버지가 나를 싫어한 일도, 그 말에 따르자면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까 무의식 차원에서 내가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의식 차원에서 아버지가 나를 싫어하고 또한 나도 아버지를 싫어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를 싫어할까요? 그 이유는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죄인인 나를 싫어하고, 그 결과로 아버지가 나를 싫어하고 또한 나도 아버지를 싫어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죄인이라는 생각, 그 생각은 에고가 만들어낸 거짓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거짓된 생각을 꼭 움켜쥐고 깊은 죄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갖 불행을 자초합니다. 따라서 성령께 그 거짓된 생각을 버리게 도와달라고 청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거짓된 생각 대신,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참된 생각을 받아들이게 도와달라고 청하는 겁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짓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고 생각하는 참 자아로서 살게 도와달라고 청하는 겁니다. 이것이 첫째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아버지를 축복하고 또한 아버지한테 축복을 청하는 것입니다. 첫째 단계가 나를 대상으로 하는 단계라면, 둘째 단계는 아버지를 대상으로 하는 단계입니다. 첫째 단계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죄인이라고 생각한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면, 싫어했던 아버지도 나와 똑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입니다. 그 사실을 확언하는 겁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인 그분에게 축복을 청하는 겁니다.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여, 나를 축복하여 주소서.” 그러니까 싫어했던 아버지는 그분의 거짓 자아인데, 그분의 참 자아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입니다. 싫어했던 아버지를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그분의 참 자아를 만나주는 일이고, 그것이 그분을 축복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분에게 나를 축복해달라고 청하는 겁니다. 내가 싫어했던 아버지는 나를 축복해주지 못했을 겁니다. 야곱이 베냐민을 축복해주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나를 축복해주지 못한 육신의 아버지는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분에게는 나를 축복할 사랑과 권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참 자아인 하나님의 아들은, 나를 축복할 사랑과 권능을 온전히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나를 축복해달라고 청할 때, 그 아버지는 한계를 지닌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그분의 참 자아를 가리킵니다. 그렇게 청할 때 그분은 기꺼이 나를 축복해주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일어나는 그 일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그분의 축복이 온 마음에 가득 고이는 걸 느껴 보십시오. 그리고 축복을 받으며 감사하십시오.  

  그 대상이 꼭 아버지일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엄마에 대해 부정적 감정이 있다면 엄마에 대해서 똑같이 하면 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부모뿐만 아니라 긍정적 부모에게 해도 됩니다. 그때는 첫째 단계는 빼고 둘째 단계만 하면 됩니다. 더 나아가 돌아가신 부모에게 해도 됩니다. 돌아가신 부모가 그리울 때 둘째 단계를 하는 겁니다. 그분을 축복하고 그분한테 축복을 청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리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이 방법의 핵심은, 마음이 눈에 보이는 육적 차원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으로 옮겨감에 있습니다. 마음이 평생 육적 차원에 머물러 있는 한, 아버지나 엄마에 대한 미움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마음이 자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차원에 머물 때 미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 자아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영적 차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부인하는 사람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이 과정의 마지막은 부모님께 축복을 청하고, 축복해주심에 감사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싫어하는 아버지(엄마)에게 감사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싫어하는 아버지의 참 자아를 만나는 과정을 밟으면 감사가 가능해집니다. 여러분이 싫어하는 아버지(엄마)에 대해 감사를 느끼는 것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는커녕 미움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정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엄마)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성격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가 내 마음의 저변을 유유히 흐르게 되면, 주어지는 모든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곧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우리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이해인 수녀님의 “감사와 행복”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 그리고 내 한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되도록/ 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 부르고 싶다.// 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 감사하면 행복하리라./ 감사하면 따뜻하리라./ 감사하면 웃게 되리라.// 감사가 힘들 적에도/ 주문을 외우듯이 시를 읊듯이/ 항상 이렇게 노래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하늘의 높음과 바다의 넓음과/ 산의 깊음을 통해/ 오래오래 사랑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지 않았다면 지금 살아서 하늘과 바다와 산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이니 당연히 감사해야 하는 건데, 어쩌다 보니 그동안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이제 부모님의 참 자아를 만나는 과정을 통해 감사가 가능해졌으니, 비로소 생명을 주심에도 감사를 느껴보는 겁니다. 이제 그 감사가 확장되어 그 감사로 인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고, 따뜻해지고, 웃게 되는 겁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위대한 삶의 뿌리에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그 감사는 우리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성격이 같다고 했습니다. 그 감사로 행복한 삶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

주님,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부모님께 감사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드라마 <하이에나>의 김혜수와 같은 사람에게
당신의 아버지에게 감사를 느껴보라고 하면 버럭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품고 계속 살아가면 불행을 안고 살게 됩니다.
어린 시절 불행의 원인이 상당 부분 아버지에게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계속 아버지를 정죄하며 살아가는 것은 나를 정죄하는 일이 되어
그 결과 스스로 불행을 선택하며 살게 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그러므로 오늘 전해 받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터득하여
육신의 아버지 안에 있는 영적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게 이끌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를 정죄하는 대신 축복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마침내 아버지에게 감사를 느끼는 기적이 나에게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그 감사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하나 되어 내 마음을 채움에 따라
주어지는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삶이 되게 인도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감사로 인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지고, 따뜻해지고, 웃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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