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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파란 마음의 주인공 (창50:1-14)

  무엇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선택을 미루거나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흔히 ‘결정 장애’ 혹은 ‘선택 장애’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에게 결정 장애가 있는지 스스로 진단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 7가지 질문에 대해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 몇 개나 되는지 보는 겁니다.

1. 메뉴를 선택하지 못해 타인이 결정해준 메뉴를 그냥 먹을 때가 많다.
2. 결정하지 못해 학업이나 연애 등을 포기한 적이 있다.
3. 혼자서는 쇼핑을 하지 못하며, 누구든 대신 결정을 내려줄 친구가 곁에 있어야 한다.
4. 누군가의 질문에 “글쎄, 잠시만 기다려봐.” 혹은 “잘 모르겠는데.”와 같은 모호한 말을 되풀이한다.
5. 사소한 결정을 대신 좀 내려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SNS에 올린 적이 있다.
6. 선택을 제때에 하지 못해 피해를 본 적이 있다.
7. 선택하는 것이 두렵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

  이 중 0~2개는 정상이며 결정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입니다. 3~5개는 결정 장애가 의심되는 단계이며, 5개 이상은 심각한 결정 장애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정 장애의 원인은 개인적 측면도 있고 사회적 측면도 있습니다. 오늘 이와 연관된 문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야곱이 죽었습니다. 요셉이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시신이 썩지 않도록 시신에 방부제 향 재료를 넣는데 꼬박 사십 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요셉뿐만 아니라 이집트 사람들이 야곱의 죽음을 애도하며 칠십 일을 곡하였다고 합니다. 이어서 야곱의 유언대로 가나안으로 유해를 옮겼습니다. 어마어마한 상여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야곱의 시신을 막벨라 굴에 장사했습니다. 요셉은 장례를 치르고 나서 형제들과 함께 이집트로 돌아왔습니다.

  야곱의 장례를 치르는데 요셉 얘기뿐입니다. 나머지 아들들은 14절에 ‘형제들’이란 표현으로 딱 한 번 언급될 뿐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기자가 요셉을 주인공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나머지는 조연이거나 엑스트라라고 하겠습니다.

  주인공을 국어사전은 “소설, 연극, 영화 등에서의 사건을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화배우들은 작품에서 주인공 역할을 맡기를 바랄 것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누가 주인공인가에 따라 흥행에서 큰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생각하면 내 인생에도 주인공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됩니다. 문제는 내가 주인공으로서 내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알고, 주인공으로서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보편적으로 볼 때 간단하게 말해서 행복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쁨, 평화, 사랑, 만족 등이 충만한 삶입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주인공으로서 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쉬운 예로 마마보이를 들 수 있습니다. 마마보이는 자기 엄마를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세운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엄마가 자기 인생을 주도합니다. 자기 엄마가 자기 인생을 쥐락펴락합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처음에 말씀드린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결정 장애가 있다면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살기 어렵습니다. 둘째는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결정 장애를 가진 건 아니지만, 주변에 휘둘리는 대상이 있어서 그에게 휘둘리게 될 때는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마마보이가 그런 경우이고, 마마보이가 아니더라도 배우자나 자식에게 휘둘릴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핑계를 잘 대는 사람입니다. 주변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 핑계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종 결정권이 자신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세웠을 때 그 결정을 내가 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결정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해 봅니다.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선택을 미룰 때 선택을 미루는 것도 결정입니다. 선택을 미루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것도 결정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선택을 미루기로 결정하는 것과 당장 선택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편의상 전자를 A 결정, 후자를 B 결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사람의 경우 휘둘리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휘둘리기로 결정하는 것과 휘둘리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가 A 결정, 후자가 B 결정입니다. 핑계를 자주 대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핑계를 대기로 결정하는 것과 핑계를 대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역시 전자가 A 결정, 후자가 B 결정입니다. A 결정이 많을수록 내 인생의 주인공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많이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존감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존감은 행복의 필수 요소이니만큼, A 결정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A 결정은 무조건 나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데 나는 정보가 별로 없고 또한 매우 까다로운 선택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좋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고 또한 지혜롭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결정을 부탁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도 내가 선택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A 결정에도 부정적인 게 있고 긍정적인 게 있습니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것은 부정적 A 결정입니다. 때로 긍정적 A 결정은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부정적 A 결정을 하지 않고 B 결정을 하면서 살아가면 온전히 주인공으로 살게 되는 걸까요? B 결정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나는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어린아이처럼 제대로 아는 게 없습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아는 것에 한계를 지닙니다. 잠시 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존재가 어떤 일에 결정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그 결정이 온전한 결정이 될 수 있을까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존재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며 살면 그게 주인공으로 사는 것일까요? 그렇게 해서 자기가 원하는 기쁨, 평화, 사랑, 만족 등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여기서 아주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늘 빨간 마음과 파란 마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빨간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든지, 파란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B 결정보다 훨씬 중요한 일은 파란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파란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면 부정적 A 결정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파란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모든 것을 성령께 맡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A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는 거라면, 파란 마음을 선택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성령께 결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A 결정과 B 결정 그리고 파란 마음을 선택하는 결정, 이 세 가지 결정의 의미에 대해 여러분이 잘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A 결정은 다른 사람에게 선택을 맡기는 것이고, B 결정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파란 마음을 선택하는 결정은 성령께 선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셋 중에서 세 번째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겨우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만 알 수 있는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모두를 완벽하게 아시는 성령께 선택을 내맡기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한편 성령은 주변의 어떤 지혜로운 사람한테 도움을 받으라고 안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결정인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의 결정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파란 마음을 선택함으로써 성령께 결정을 맡기는 것이 가장 나 자신을 위한 일이 됩니다.

  성령이 원하는 것은 나의 완전한 행복입니다. 곧 기쁨, 평화, 사랑, 만족 등이 충만한 삶입니다. 앞에서 나도 그런 삶을 원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파란 마음의 나입니다. 빨간 마음의 나는 행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은 빨간 마음의 내가 행하는 것을 보면 증명됩니다. 빨간 마음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공격입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노하는 것 등입니다. 그 결과는 불행입니다. 따라서 파란 마음의 나로서 살아야 진정한 행복을 원하게 되고, 또한 나의 완전한 행복을 원하는 성령께 모든 걸 내맡김으로서 그 행복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길이 됩니다.

  70회 생일을 맞이한 노인이 갑작스러운 치통으로 치과를 찾았습니다. 급히 차를 몰아 갓길에 주차하였습니다. 치료를 받고 나오니 교통순경이 딱지를 떼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이 70회 생일인데 아침부터 이가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소. 평생 법을 어긴 적이 없는데 생일날 딱지를 떼게 생겼군요. 그렇게 되면 오늘은 정말 가장 재수 없는 생일날이 될 거요.” 두 사람의 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경찰이 법과 인정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지켜보았습니다. 노인의 하소연에도 경관은 고지서를 기록한 후 무심하게 건네주고는 돌아섰습니다. 둘러선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역시 법이야? 그렇지. 그래야 세상이 굴러 가는 거지.” 노인은 고지서를 받아들고 차에 올라타서 중얼거렸습니다. “법은 법이지. 그래도 너무 하네.” 노인이 벌금이 얼마인지를 확인하려고 고지서를 펼쳐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고지서에는 벌금 대신 “어르신, 생신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경관은 결정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딱지를 떼자니 70회 생일을 맞은 노인에게 지나친 일 같아 보이고, 안 떼자니 둘러선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었습니다. 안 떼었다가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하면 곤란해집니다. 그 순간 경관은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파란 마음을 선택한 거로 보입니다. 그러자 성령이 지혜를 주신 겁니다. 곧 엄한 표정을 짓고 고지서를 발행하지만 내용은 따뜻한 축하의 글을 적는 겁니다. 노인도 기뻤겠지만 경관도 마음이 좋았을 겁니다. 성령께 결정을 맡길 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곧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주인공의 역할을 주변 사람에게 맡기고 살지는 않습니까? 혹은 우리는 모두 잘 모르는 아이와 같은 수준인데,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몰라서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내 인생의 온전한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파란 마음 선택을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파란 마음으로 성령께 모든 걸 내맡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 길을 잘 걸어 파란 마음에서 비롯된 기쁨, 평화, 사랑, 만족 등이 점점 깊어지기 바랍니다. ❉

주님,
내맡김은 영어로 표현하면 entrust입니다.
그리고 entrust는 trust 곧 신뢰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따라서 내맡김은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성령을 신뢰하여 성령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친절하고, 지혜롭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를 위해 파란 마음을 선택하는 결정을 매 순간 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고 모든 결정을 성령께 내맡기는 삶을 살아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높은 자존감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내가 원하는 기쁨, 평화, 사랑, 만족 등이 충만한 삶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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