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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희담
   일어나서 빛을 발하라 (사60:1, 눅17:20-21)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이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위의 형들에 비해 못난 아이라는 판단을 부모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의 젖을 먹어야 하는데 어떤 사정으로 젖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할머니에게 보내져 할머니의 젖을 빨게 되었는데 빈 젖을 빠는 쓰라린 기억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형들은 늘 1등을 했지만 그는 1등을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그를 늘 질책과 냉대로 대했습니다. 그래 자신 안에 “공부 못하는 아이, 열등한 아이,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등의 어두운 자기 이미지가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하였습니다. 그 일을 통해 움츠러든 자신을 보상받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야학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러다 야학 일제 소탕령이 내려졌는데, 그때 동료들로부터 프락치로 지목받게 되었습니다. 그래 그 아픔으로 다시금 자기 안의 어두운 동굴 속으로 움츠러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고등학교 교사이고 부인도 교사입니다. 그래 경제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의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는 자의식은 계속 그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래 집을 사는데, 새 아파트를 살 수 있는데도 일부러 헌 아파트를 삽니다. 또한 새 차를 살 수 있는데 일부러 중고차를 삽니다. 그리고 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인은 그 여자가 아닙니다. 지금 부인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다만 불쌍한 그 여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는 자기 이미지가 집을 구하는데, 차를 구하는데, 부인을 구하는데, 계속 따라다닌 겁니다.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는 자기 이미지가 그의 성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격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성격으로 원치 않는 것을 선택하고, 선택한 후 후회하고, 그리고 그러한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낍니다. 늘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그리고 그 허전함과 쓸쓸함이 반복되면서, 그것이 또 다른 성격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늘 허전하고 쓸쓸한 존재야. 인생이란 그렇게 허전하고 쓸쓸한 거야.”라는 신념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존재가 그렇다고 생각하니,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 매사에 허전해지고 쓸쓸해지는 쪽으로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허전함과 쓸쓸함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악순환의 길을 걷는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격의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서로 종류가 다르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은 성격에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부정적 성격은 어린 시절에 형성됩니다. 그리고 대개는 그 성격을 갖고 일생을 살아갑니다.

  성격은 두 가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하나는 타고나는 것입니다. 흔히 기질이라고 표현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내향적 성격과 외향적 성격입니다. 또 하나는 주로 부모의 양육 과정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방금 소개해 드린 고등학교 교사의 성격은 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타고난 것과 생후 형성된 것, 이 둘을 합쳐서 ‘개인의 성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성격이 나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부정적 성격을 나와 동일시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부정적 성격은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격의 노예로 살지 않고 성격의 주인으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우리가 아는 최고의 방법은 내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신약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개역성경은 “너희 안에 있다”고 번역했습니다. 그 번역이 더 낫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평화와 지복이 도도히 흐르는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한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재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흔히 하나님이 저 높은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내 마음 안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 신성이 있다고 표현해 봅니다.  

  신성이라는 말은 흔히 ‘거룩하고 성스럽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하나님의 성품’의 줄인 말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해도 됩니다.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서 나를 주재하시는데, 하나님의 성품으로 주재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고 말해도 됩니다. 곧 내 안에 신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개인의 성격과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성격과 하나님의 성품을 함께 지닙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개인의 성격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도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지 못하고 개인의 성격으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개인의 성격에는 부정적 내용이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성품에는 부정적 성격이 조금도 없습니다. 개인의 부정적 성격의 노예로 살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어떤 내용을 지닐까요? 대표적으로 사랑과 평화를 들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에는 사랑과 평화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마음에 계시니 내 마음에도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겁니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에서 사랑과 평화를 잘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대신 미움, 갈등, 두려움 같은 것들은 쉽게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선택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의해 나타납니다. 예컨대 개인의 성격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로 장점을 선택하여 살고, 또 어떤 사람은 주로 단점을 선택하여 살아갑니다. 상대방을 대할 때도 주로 그의 단점을 선택하여 보는 사람이 있고, 주로 장점을 선택하여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듯 개인의 성격과 하나님의 성품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미움, 갈등, 두려움 같은 것들은 개인의 성격에 포함되고, 사랑과 평화와 같은 것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포함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개인의 성격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미움, 갈등, 두려움 같은 것들을 쉽게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노력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선택하면 사랑과 평화를 느끼는 일이 쉬워집니다.

  그것을 그른 마음과 바른 마음의 선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격은 그른 마음 안에 있는 거고, 하나님의 성품은 바른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금 수준이 주로 그른 마음을 선택하기 때문에 미움, 갈등, 두려움 같은 것들을 쉽게 느끼는 겁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주로 바른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사랑과 평화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른 마음을 선택하려는 용의를 자주 내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 곧 신성을 자주 선택하게 되면 자신에 대한 자기 이미지도 달라집니다. 예컨대 자신을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 행복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 등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또한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에 대한 신뢰가 깊어집니다. 그래서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믿음이 커집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알맞은 때에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다는 믿음이 커집니다. 그래서 든든한 마음과 희망찬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고등학교 선생님이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바른 선택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생활에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마침 몰고 다니던 차가 수명이 되어 새로 차를 사는 중이었습니다. 물론 중고차를 사려 한 것입니다. 그는 차 구매를 의뢰했던 사람에게 전화하였습니다. 중고차 구매를 취소하고 새 차를 사겠다고 말입니다. 그 전화를 하고 난 그는 기쁨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좋은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라는 40여 년 동안 쓰고 있던 굴레에서 벗어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성을 ‘하나님의 성품’의 줄인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성이라는 말은 흔히 ‘거룩하고 성스럽다’는 뜻으로 사용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게 되면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 안에 하나님의 성품 곧 신성이 있음을 알고, 그 신성을 선택하여 살게 되면 신성한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본래 하나님과 꼭 닮게 창조되었기에 신성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자신의 본성을 회복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지난 주일에 이희숙 씨가 집에서 만두를 만들어 제게 갖다주었습니다. 그런데 만두를 담아온 봉투에 이런 글씨가 영어로 적혀 있었습니다. “It’s your time to shine” 당신이 빛날 시간이라는 뜻이겠습니다.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말을 It’s my time to shine이라고 바꿔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빛날 시간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지 않으면 어떤 상태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입니다. 미움, 갈등, 두려움 등은 모두 어둠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내가 빛을 발하지 않으면 그런 것들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빛을 발하면 그런 것들은 사라지고, 대신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사랑과 평화가 피어오르고 또한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계속 생각하노라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화요일에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갔습니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저는 그 말을 떠올렸습니다. 줄여서 그냥 It’s time to shine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제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비춰주는 게 느껴졌습니다. 제 안의 사랑이 모두에게 전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매우 감격스러운 상태를 체험했습니다.

  ‘내가 빛난다’는 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내 안에 빛이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빛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나를 통해 빛을 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으로 사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신성으로 살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성한 존재로서 사는 모습입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라.” 개역성경은 “일어나서 빛을 발하라.”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세상은 본래가 어둠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그 어둠의 세상에 빛을 비추라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특히 코로나로 인한 어둠으로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고통당합니다. 그 두려움과 고통의 세상에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실로 지금은 빛을 비추어야 할 때입니다. It’s time to shine! 그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두려움으로 움츠러져 있지 말고,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당당하게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빛을 발하면 우선 내가 미움, 갈등, 두려움 등 온갖 어둠에서 벗어나, 사랑과 평화의 복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빛을 발하면 우선 내가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2021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세상의 어둠이 깊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인 여러분이 하나님 신성을 선택하여 살기 바랍니다.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빛을 발할 때만 누릴 수 있는 기쁨과 감사와 희망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어느 해보다 행복한 한 해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

주님,
그른 마음을 선택하면 개인의 부정적 성격으로 살게 되고
바른 마음을 선택하면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게 됩니다.
한편 그른 마음은 빨간 마음인데 빨간 마음을 선택하면 빨간 세상을 살게 되고
바른 마음은 파란 마음인데 파란 마음을 선택하면 파란 세상을 살게 됩니다.
빨간 세상에서 보이는 것과 파란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 형태는 똑같지만
빨간 세상은 어둠이 지배하고 파란 세상은 빛이 찬란합니다.
그래서 같은 조건인데도
빨간 세상에서 살면 코로나 등의 지배를 받으며 두려움으로 움츠러들게 되고
파란 세상에서 살면 코로나 등이 영향을 미치지 못해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파란 세상을 살기 위한 좋은 방법이
자기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하나님의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It’s time to shine!”이라고 외치며
내면의 빛을 뿜어내어 사방을 비추는 것입니다.
어둠에 갇혀 신음하는 형제들에게 사랑의 빛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길을 잘 걸어가도록 올 한 해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빛나는 한 해, 기쁜 한 해, 복된 한 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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