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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 한 대가 미국 뉴욕에 있는 케네디 공항을 출발하여 서울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소련 상공에서 소련 요격기의 공격을 받고 바다에 추락하였습니다. 이 사고로 269명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행기 안에 저의 형님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까지 저는 부모님 모시는 일은 형님에게 내맡기고, 저는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형님의 죽음은 저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모님 모시는 일을 제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자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의 제 나이가 서른 살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원주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 해 3월에 저는 춘천교도소에서 만기출소 했는데, 그러자 원주의 서재일 목사님이라는 분이 저를 그 교회 전도사로 부르셨습니다. 감옥생활을 두 번이나 한 저를 받아주는 교회는 흔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고 저를 거둬주시겠다는 고마운 뜻이었습니다. 그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목사님의 뜻에 따랐지만 저는 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일한지 1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 해 말까지만 그 교회에서 일하고, 그 다음부터는 어느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기로 그 단체의 책임자와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당장 원주의 교회를 사임하고 부모님이 계신 서울로 돌아온 저는 돈 벌 궁리를 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압원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전에 지압을 좀 배웠는데, 마침 지압을 아주 잘 하는 분을 만나게 되어 그분과 동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에게 개인적이 사정이 생겨 몇 개월 만에 지압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빚만 진 것입니다.
그 때까지 저는 교회의 목회자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일 하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돈을 벌 다른 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침 그 무렵 교단 총회에서 강원도에 있는 태백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하고, 그 일을 맡을 목회자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분의 추천으로 총회 사업국의 목사님께서 제게 그 일을 맡아보겠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그 교회는 태백 탄광촌의 광부들을 위한 특수선교 교회였습니다. 교회 개척을 위한 모든 물질적인 지원을 총회가 하는 겁니다. 교회 공간을 마련하는 돈에서부터 시설비와 목회자 사택비 등을 모두 총회에서 지원을 합니다. 그리고 사례비를 3년 동안 총회에서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액수는 당시로서는 제법 높은 편이었습니다. 일단 3년 동안 안정된 수입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광부들을 위한 특수선교라는 것이 마음에 들어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대신 돈을 송금해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편 1978년에 노동자선교를 목표로 하여 구로공단 안에 개척된 신명교회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여파로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다 몇몇 교인들이 서대문에 작은 공간을 빌려 다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다시 구로공단 안에 예배 처소를 마련할 꿈을 안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원주에서 올라와서 서대문에 있는 신명교회에 출석을 하였습니다. 교단 산업선교 기관에서 일을 하시던 이광일 목사님께서 무임으로 주일에 예배를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교인들은 10명 남짓 되었습니다. 대학 출신의 몇 명과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몇 해 동안 연극 등의 수익사업을 통해 공간 마련을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간신히 500만원을 모은 교인들은 신길동에 20평 정도의 예배 처소를 구했습니다. 물론 월세입니다.
저는 신길동 예배당 꾸미는 일을 맡았습니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일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교인들이 갑자기 제게 신명교회 목회자로 일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태백으로 내려가기로 총회와 약속을 한 형편이었고, 또한 신명교회는 제게 사례비를 줄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당시 제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님을 모실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의 부탁을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은 저희 집까지 찾아와서 끈질기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인들도 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지라 얼마 후 저를 단념하였습니다. 신명교회는 전임 목회자를 구하지 못하고 신길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신길동의 공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모두 끝낸 어느 날 저녁, 신길동 교회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옥상에는 제가 설치한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기대어 어두워가는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신명교회와의 인연은 끝이 나는 겁니다. 며칠 후면 태백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명교회 교인들이 너무 가엽다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겁니다. 30분 정도 큰소리를 내며 울고 나니 신명교회를 맡아야겠다는 결심이 서는 겁니다.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그래서도 눈물이 났겠지만, 어떤 힘이 저로 하여금 그 결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태백의 총회 개척교회 설립을 주관하는 목사님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때 또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목사님은 처음에는 화를 몹시 내다가 결국은 저를 수긍해 주셨습니다. 그분도 신명교회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신명교회를 잘 꾸려가도록 하게.” 그리고 신명교회는 1984년 10월 14일에 신길동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2년 동안 준비를 하여 마침내 구로공단 안에 있는 지금의 건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신명교회의 오랜 꿈이 이뤄진 것입니다.
지금에서 보면 제가 신명교회 목회자가 된 것은 제 인생에서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신명교회 목회자가 되게끔 도구가 되었던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신명교회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이제 27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그만두지 않고 지금까지 신명교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신명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크나큰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명교회에서 일하게끔 지난 27년 동안 도구가 되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27년 동안 많은 고생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난하게 살았고, 요즘은 안 그렇지만 예전에는 거의 매일 밤 11시가 되어야 퇴근하였습니다. 또 제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다고 저를 음해한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제게 아픔을 안겨준 사람들을 원망하였습니다만, 제가 아픔을 겪게 된 것은 순전히 저의 부덕의 결과라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 모든 분들에게 오로지 감사를 드립니다. 물론 지금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어주고 계시는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과거의 많은 분들 덕분에, 그리고 현재의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지금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에 수많은 사람들이 원인이 되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개중에는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분들에 대해서도 오로지 감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본 대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도 매일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2008년에 우리나라에서 하루 평균 672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오늘>이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들은 거기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만, 살아서 오늘을 맞이하고 있음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내일을 오늘로서 맞이하지 못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오늘을 맞이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가 건강한 몸으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음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살아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없었더라면 오늘 내가 살아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만약 없었더라면 오늘 내가 살아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나를 비난했던 사람 덕분에, 나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 덕분에, 그래서 내가 싫어하고 미워했던 사람 덕분에, 오늘 내가 살아서 이 자리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가끔 매우 행복한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 경치 좋은 곳을 여행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갓난아이의 환한 미소를 볼 때, 매우 보람 있는 일을 하였을 때, 어떤 목표를 성취했을 때,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훌륭한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깊은 묵상 중에 하나님의 생명 기운을 느낄 때 등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그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끔 수많은 사람들이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헤아리십시오. 그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없었더라면 여러분은 그 자리에 이르지 못하였고, 그 순간을 맞을 수 없었음을 헤아리십시오. 그 사람들 덕분에 여러분이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헤아리십시오. 또한 그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신 하나님 덕분에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음을 헤아리십시오. 그리하여 그 사람들과 하나님께 짧게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행복한 순간을 맞을 때마다 짧게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습관을 길러 가십시오.
모든 사람의 모든 행태는 자신에게 궁극적 선의 도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탭니다. 곧 모든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의 모든 행태, 그리고 모든 사건이 자신에게 궁극적 선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의 완전한 뜻입니다.
A와 B가 있습니다. A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열 번 잘 해 주다가 한 번 잘 못 해 주면 그를 비난합니다. 한편 B는 상대방이 자신을 비난하고 또한 손해를 입혔는데도 그에게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행태와 모든 사건이 자신에게 궁극적 선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상대방 덕분에 오늘 자신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달아 알기 때문입니다. A와 B의 인생의 질은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습니까? 여러분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으시다면 B와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액면 그대로 따먹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고 선과 악을 잘 구분하여 선한 삶을 살아가되,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타인에 대한 판단과 비난을 조심하고 극복하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모든 행태는 자신에게 궁극적 선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또한 상대방 덕분에 오늘 자신이 살아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곧 B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A는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A는 말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지경이 되었단 말야. 내가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것은 모두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야.” A는 언제나 상대방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합니다. 반면에 B는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B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성공할 수 있었어. 모든 것이 여러분 덕분입니다. 당신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B는 언제나 겸손하게 모든 공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 “때문에”라는 말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배어 있고, “덕분에”라는 말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모든 행태와, 모든 사건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을 궁극적 선의 인생으로 이끌어 가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덕분에 자신이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언제나 “덕분에”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그의 삶은 겸손과 감사로 이어집니다. 그의 삶은 여백이 많아 한가롭습니다. 그의 삶은 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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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10/39 
노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