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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의 “십자가”라는 시입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시인은 예수님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표현하였습니다. 곧 괴로움과 행복함입니다. 어떻게 괴로운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괴로움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고통스럽지 않고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하셨습니다. 진리의 길을 걷는 존재는 그 길이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예수님처럼 자신도 그런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여기서 길과 진리와 생명이 각각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셋은 하나의 의미를 지닙니다. 길이 곧 진리이고 진리가 곧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씀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길이라는 말씀에는 걸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인생에는 크게 세 종류의 길이 있다 하였습니다. 죽음의 길, 생명의 길, 평범한 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길이라 할 때 어느 길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생명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옳지 않았을까요? “나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그런데 왜 그냥 길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길은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길은 생명의 길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길이나 평범한 길은 길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는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다.”라고 말씀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죽음의 길은 길이 아니고 생명의 길만이 유일한 길이기에 “나는 길이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흔히 인격이 훌륭한 사람을 도인(道人)이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도인이란 문자대로 이해하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누구나 도인인 겁니다. 그런데 왜 인격이 훌륭한 사람만 도인이라 표현하는 겁니까? 죽음의 길은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길만이 길이기에, 그 길을 걷는 사람만을 도인이라 말하는 겁니다.
사도행전에는 도(道)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도를 믿는 사람, 도를 따르는 사람 등 예수님의 말씀을 도라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시작합니다만, 중국 성경은 그 부분을 “태초에 도가 있었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그리스도인은 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뒤를 따라 걷는 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길만을, 생명의 길만을 걸으려 하였습니다.
이 길을 달리 표현하면 십자가의 길입니다. 이는 이 길이 고난을 수반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고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동적 고난입니다. 곧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고난입니다. 이 때 우리는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고난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만, 때로 너무 힘들 때는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병에 걸렸을 때 치유를 간구하는 것은, 병이라는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게 됩니다.
둘째는 능동적 고난입니다. 곧 스스로 선택하는 고난입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가끔 갈림길이 나타납니다. 그 때 왼쪽길은 불의와 거짓의 길이고, 오른쪽 길은 정의와 진리의 길입니다. 그런데 왼쪽길은 편한 길이고, 오른쪽 길은 험한 고난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정의와 진리를 위해서 오른쪽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왼쪽길은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길만이 길이고, 그 길이 바로 예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수동적 고난에는 고통이 수반되지만, 능동적 고난에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스로 선택하여 고난의 길을 걸을 때, 그 길이 물론 편한 길은 아니지만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쁨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윤동주 시인도 바로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괴로웠던 사나이라 하면서 동시에 행복한 존재라고 표현하였던 겁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철저히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고후12:13하-27) 이런 고난을 당한 바울이었지만, 빌립보 감옥에 갇혀 쓴 편지에서 그는 수없이 기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인 빌립보서를 기쁨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스스로 선택하여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그 여정이 결코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난을 스스로 선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편한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용기는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자궁을 구약성경의 히브리어는 <라함>이라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임신한 여자의 자궁이 <라함>입니다. 그리고 임신하지 않은 여자의 자궁은 <레헴>입니다. 히브리어는 임신하지 않은 여자의 자궁과 임신한 여자의 자궁을 구별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임신한 여자의 자궁을 표현하는 <라함>은 또한 긍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휼은 물론 불쌍히 여겨 돌보아 준다는 뜻입니다. 자비와 비슷한 뜻입니다. 히브리어는 모성을 참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이를 말 그대로 이해하면 우리가 창조주의 자궁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여인의 자궁이 긍휼인데 하나님의 자궁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겁니다. 이사야서 49장 15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궁에서 난 아이를 긍휼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자식을 잊고 긍휼히 여지기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궁에서 난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않고 긍휼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크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궁으로 낳은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어머니께서 자신의 자궁으로 낳은 여러분을 사랑하심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자궁으로 낳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듯이, 여러분의 어머니께서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궁으로 낳으신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불의와 거짓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부모도 있을 겁니다. 그 길이 외관상 편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이 자녀에게 행복을 안겨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자녀를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뒤늦게 후회를 하며 더 이상 그 길로 걸어가기를 원치 않을 겁니다. 우리도 그러할진대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인 우리가 당연히 정의와 진리와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생명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험합니다. 고난이 따릅니다. 그래서 그 길을 선택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용기를 발휘하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실까요?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궁으로 낳은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듯이, 여러분의 어머니께서 자신의 자궁으로 낳은 여러분을 사랑하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궁으로 낳으신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분의 어머니께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정호승 시인이 쓴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우리가 십자가 고난의 길을 걸으면, 그 길이 험하기 때문에 때론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물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상처로 말미암아 우리는 향기로운 존재가 됩니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듯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 가장 향기로운 존재가 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도인(道人)입니다. 예수께서 걸으신 진리와 생명의 길만이 자신이 걸어야 할 유일한 길인 줄 알고, 주님을 따라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도인(道人)입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때로 손해를 입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바보 같다고 조롱을 당할 수도 있고, 세상으로부터 멸시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정이 고통스럽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낳아 주신 하나님의 지극한 긍휼과 자비를 언제나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길 여정의 굽이굽이마다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만나기 때문입니다. 거칠고 험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그 여정은 은혜로 충만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 여정에서 모든 이웃을 하인처럼 섬깁니다. 흙처럼 겸허하게 세상을 섬깁니다. 어느새 자신의 품성으로 체화된 긍휼과 자비로 우주 만물을 따스하게 품습니다. 그의 삶은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행복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또 다른 시에서 이렇게 다짐하였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 있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나가겠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이르렀습니다. 언젠가 우리 인생의 가을 끝자락에 이를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때 윤동주 시인처럼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이 어떠하였는지 묻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고, 얼른 대답할 수 있고, 기쁘게 대답할 수 있고,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인생길을 걸어가지 않으시렵니까? 그 길에서 스스로 선택한 고난을 겪는다 하더라도, 당신의 자궁으로 낳아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언제나 체험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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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10/39 
노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