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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는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습니다. 마침 A가 그 길을 가다가 쓰려져 있는 그 사람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쳤습니다. 잠시 후 B가 그 길을 가다가 쓰러져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고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을 말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습니다. 다음 날 B는 돈을 여관 주인에게 주며 그 사람을 돌보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돌아와서 갚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율법 교사에게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B처럼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또 실제로 사랑을 베풀기 위해 힘을 씁니다. 그런데 몹쓸 짓을 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야 할까요? 아니,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벌이지 사랑이 아닌 걸까요? 그 말이 맞는다면 우리의 사랑은 조건적인 것이 됩니다. 곧 어려움을 겪는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사랑을 베풀고, 몹쓸 짓을 했다는 조건에서는 사랑을 베풀면 안 되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시는데 우리는 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맞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몹쓸 짓을 했다는 조건에서도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맞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퍽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르우벤이 서모를 범했습니다.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인면수심(人面獸心), 곧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은 심성 자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요셉과 관련된 일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어떤 이유로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형들이 멀리 양을 치러 갔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한테 가서 잘하고 있는지 보고 와서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들을 찾아갔는데, 형들은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죽여 버리자고 음모를 꾸몄습니다. 구덩이에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르우벤이 요셉을 구할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나중에 요셉을 건져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던 겁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지나가는 상인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나중에 르우벤이 요셉을 구하려고 구덩이에 갔는데 요셉이 없는 겁니다. 그러자 르우벤은 자기 옷을 찢으며 슬퍼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르우벤은 착하고 여린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왜 르우벤은 서모를 범하는 인면수심의 몹쓸 짓을 저질렀을까요?
르우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친엄마인 레아는 사랑하지 않고 작은 엄마 라헬만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흘리는 엄마의 눈물을 보며 자라났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깊었을 겁니다. 그리고 작은 엄마가 아이 낳는 문제로 친엄마를 질투하며 거칠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작은 엄마도 미웠을 겁니다.
레아는 아이 넷을 낳고 출산이 멈췄습니다. 그러자 자기 몸종을 통해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자기가 낳든 몸종을 통해 낳든 아이를 낳는 것만이 남편의 사랑을 받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엄마를 위해 르우벤은 어디서 자귀나무를 구해왔습니다. 자귀나무는 임신을 돕는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진귀한 식물입니다. 르우벤은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엄마에게 가져갔을 겁니다. 그런데 비록 자식은 없지만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작은 엄마가 친엄마에게 자귀나무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친엄마가 역정을 내며 말했습니다. “네가 나에게서 남편을 빼앗고도 무엇이 부족해서 이제 내 아들이 캐 온 자귀나무마저 달라느냐?” 이를 지켜보는 르우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안 그래도 작은 엄마가 미웠을 텐데 미움이 더 깊어졌을 겁니다.
또한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요셉에게만 좋은 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르우벤은 작은 엄마가 낳은 자식이라서 편애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더 깊어졌을 겁니다.
이제 작은 엄마가 죽었습니다. 작은 엄마가 살아있다면 작은 엄마의 몸종인 서모를 범할 엄두를 못 냈을 겁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작은 엄마에 대한 복수심과 또한 그동안 쌓였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서모를 범한 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르우벤의 행동이 인면수심의 몹쓸 짓이지만, 르우벤만 탓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야곱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모두가 서모를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이 아니라면 서모를 범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렇듯 어떤 사람이 몹쓸 짓을 저지를 때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것입니다. 혹은 깊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연이나 상처를 알게 되면, 비록 몹쓸 짓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해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몹쓸 짓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실수했다고 생각하신다고 전에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십니다. 몹쓸 짓을 저지르지 않은 나와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면,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대신 연민이 담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빙산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수면 위에 있는 얼음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수면 밑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열 배나 더 큰 얼음덩어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수면 위에 있는 얼음덩어리만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틀립니다. 그래서 빙산을 볼 때 수면 밑에 있는 얼음덩어리를 포함하여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수면 위의 얼음덩어리를 누군가가 행한 몹쓸 짓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몹쓸 짓만을 보고 그를 미워하고 정죄한다면 그를 온전히 보는 것이 아닙니다. 몹쓸 짓과 더불어, 수면 밑에 있어 보이지 않는 그의 사연이나 상처를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겁니다. 구체적인 사연이나 상처를 모른다 해도, 사연이나 상처가 있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그를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그를 온전히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그 자체로 그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이 됩니다. 자기가 몹쓸 짓을 저질렀는데 누군가 자기를 이해의 눈으로, 따스한 시선으로 대하는 겁니다. 그때 그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갖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사랑을 베푸는 일이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뿐만 아니라 몹쓸 짓을 한 사람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조건적 사랑의 한계를 넘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에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운명을 낳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지각은 행동을 낳는다”가 됩니다. 생각과 지각이 거의 비슷한 뜻입니다. 누군가가 행한 몹쓸 짓을 지각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지각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하는 길입니다. 몹쓸 짓만을 보게 되면 차가운 시선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지만, 몹쓸 짓의 배후에 있는 사연이나 상처를 보게 되면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몹쓸 짓을 차가운 시선으로 지각하면 차가운 행동을 하게 되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하면 따뜻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차가운 행동은 비난, 성토, 공격 등으로 나타나고, 따뜻한 행동은 이해, 용납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지각이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해하고 용납하더라도 몹쓸 짓에 대해 책임지게 합니다. 책임지게 하는 것이 당사자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몹쓸 짓이 법을 어긴 일이라면 감옥에 보내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차가운 행동은 그것과 짝을 이루는 운명으로 이어지고, 따뜻한 행동은 그것과 짝을 이루는 운명으로 이어집니다. 두 운명 중에서 후자가 나에게 더 유익한 운명인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행한 몹쓸 짓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하는 것은 복을 짓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복을 지으면 언젠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눈이 먼 사람이 어느 날 해진 옷을 깁기 위해 바늘에 실을 꿰려 했습니다. 그러나 잘 안 되어 도움을 청했습니다. “누군가 복을 지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위해 바늘귀를 좀 꿰어 주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누군가 그의 손에서 실과 바늘을 받아 해진 옷을 꿰매 주었습니다. 바늘귀를 꿰어달라고 했는데 옷을 꿰매 준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다름 아닌 그 사람의 스승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스승께 물었습니다. “스승님은 천하제일의 복덕을 갖추신 분인 줄 아는데, 그 위에 또 복을 지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복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나쁜 길에 떨어져 고통 속에서 헤맨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복을 지으려는 것이다.”
스승은 자기가 복을 지으면 다른 사람이 그 혜택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스승은 그래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복을 지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의 주제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간 수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곧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하자는 것인데, 스승은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이 복을 받도록 자기가 대신 복을 짓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몸과 마음을 다해 그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Miracle from heaven"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박은주 집사님이 그 영화를 집에서 가족과 함께 다시 본 모양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그 영화와 관련된 내용으로 기도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끝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다만 나는 타인에게 기적을 만드는 사람 되게 도와주세요. 타인의 기적을 만드는 일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그저 가뿐하고 자연스럽고 즐거움이 되게 하소서.” 이는 앞의 이야기의 스승과 비슷한 마음입니다. 곧 타인을 위해 복을 지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타인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위가 자신을 위해 복을 짓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 나와 타인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주는 대로 내가 받기 때문입니다. 몹쓸 짓을 저지른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각하는 것이 복을 짓는 일이 됨은 그런 원리에서 비롯되고, 타인을 축복하는 것이 자기 복을 짓는 일이 됨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타인과 내가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마 몹쓸 짓을 하는 사람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이든 단순히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든, 그런 사람 만나는 것을 복을 짓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을 지은 만큼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올해 안에 받든 아니면 한참 후에 받든 말입니다. 나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받는 것입니다. 그 복된 길을 가뿐하고 자연스럽고 즐겁게 걸어가시는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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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10/39 
노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