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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아브람에게 내려졌던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떠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무엇으로부터 떠난다는 말입니까? 지난 시간에 그것은 과거로부터 떠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과거의 관계, 습관, 가치관, 기억으로부터 떠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떠남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흔히 나무는 말 그대로 ‘나’가 ‘무(無)’인 것이라고 합니다. 나가 없다는 겁니다. 곧 나를 주장하거나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저 흐름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종교는 그런 상태를 지향합니다.
불교는 흔히 자력종교라고 말합니다. 곧 나를 버려서 스스로 해탈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나를 버림으로서 스스로 득도하려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나를 버림에 있어서는 불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마16:24)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인데, 곧 나를 버리라는 뜻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6) 자기 목숨을 미워한다, 역시 나를 버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울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전15:31a)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날마다 나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나를 버림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를 버린 그 자리에 대신 그리스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대체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나 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변형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중심이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와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떠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의미는 우선 과거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자기중심적 삶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어머니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둘 다 혼인하여 미국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자식들을 보기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선 LA에서 살고 있는 딸네 집으로 갔습니다. 딸과 사위가 어머니를 반겨주었습니다. 밤늦게까지 밀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깜짝 놀랄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딸은 자고 있는데, 사위가 일찍 일어나 혼자 아침식사를 해 먹고,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딸을 아껴주는 사위가 대견스럽게만 보였습니다.
다음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들네 집으로 갔습니다. 역시 아들과 며느리가 반겨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꼴도 안 보이고, 금이야 옥이야 받들어 키워서 미국 유학까지 시켰던 아들이, 궁상맞게 제 손으로 아침을 지어 먹고,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런 아들이 한없이 측은하고, 한편 며느리가 몹시 괘씸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남자의 똑같은 행동에 대해 어머니의 반응이 판이한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자기중심성 때문입니다. 첫날 사위의 행동을 보지 않았다면, 다음날 아들의 행동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을 어느 정도 양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며느리에 대해 괘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날 사위의 행동을 보았습니다. 덕분에 자기 딸이 편안하게 늦잠을 자는 것에 대해 흡족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 놓고서 바로 다음날 며느리가 괘씸하게 생각된다면, 어머니의 자기중심성이 아주 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은 두 가지 문제를 지닙니다. 하나는 그 자체가 추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이 괴롭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해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괘씸한 마음이 올라왔다는 것이 바로 힘든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자기중심성이란 자신을 위하는 마음인데, 그게 엉뚱하게 자신을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기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소중해” 라고 할 때 바로 그 ‘나’가 문제가 됩니다. 내 가족, 내 집, 내 차, 내 생각 등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나’가 문제가 됩니다. 모든 종교는 그 나로부터 벗어남을 지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실 때, 그것은 바로 그 나로부터 떠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시나무 새>의 노랫말을 아십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안에 너무나 많이 있는 ‘나’, 그 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서 쉴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나’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추하게 만들고, 내게 고통을 안겨 주고, 타인에게도 불편을 안겨 주는 그 ‘나’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자기중심적 삶에서 떠나서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앞의 어머니 이야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날 어머니는 사위의 모습을 보며 대견스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들의 모습을 보며 측은한 마음과 함께, 며느리에 대해 괘씸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머니가 자기중심적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어머니가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 바뀌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아들의 모습에 대해 장하다고 느낄 겁니다. 그리고 아내를 저토록 배려하고 사랑하니, 두 사람이 참 행복하게 살 것을 알 겁니다. 그래 첫날 아내를 배려하는 사위의 모습을 보며 딸이 남편과 행복하게 살 것을 알고, 다음날 역시 아내를 배려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장한 마음과 더불어 아들이 아내와 행복하게 살 것을 알아, 어머니의 미국 여행은 참 흐뭇한 여정이 될 겁니다. 자기중심적 삶은 딸과 사위를 구분하고 아들과 며느리를 구분하지만, 하나님 중심적 삶에는 그런 구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이 딸과 사위를 똑같이 사랑하시고, 아들과 며느리를 똑같이 사랑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적 삶과 관련하여 저는 <하나님께 묻혀 산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언젠가 그 표현이 딱 떠올랐습니다. <묻힌다>는 동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이 말씀은 밀알이 죽는 상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밀알이 땅 속에 묻혀야 합니다. 밀알이 땅에 묻히지 않고 열매를 맺을 방법은 없습니다. 밀알의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그 죽음은 땅에 묻힘을 전제로 합니다. 땅에 묻히지 않고도 밀알은 죽을 수 있습니다. 그저 땅 위에 떨어져도 시간이 지나면 밀알은 죽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죽음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땅에 묻히는 죽음이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봅니다. 길가에 뿌려지고, 돌짝밭에 뿌려지고, 가시덤불에 뿌려진 것입니다. 세 경우 모두 땅에 묻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곧 땅 속 깊이 묻혔다는 의미입니다. 비로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묻힌다>는 현상이 갖는 가치입니다.
<묻힌다>는 것은 이렇게 열매를 맺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묻혀 산다는 것도 매우 좋은 의미를 지닙니다. 나를 버려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하나님께 묻힐 때 온전히 버려집니다.
또한 내가 하나님께 묻혀 살 때 매우 든든한 삶을 살게 됩니다. 매우 안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많은 허물도 묻어 주십니다. 그 부끄러운 것들을 하나님께서 묻어 주십니다. 또한 나의 모든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묻는 삶이 되기도 합니다. 나로부터 떠난다고 하는 것은 내 욕심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한 내 근심 내 걱정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할 때, 내 욕심과 더불어 내 근심 내 걱정도 못 박는 것입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나를 하나님께 묻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제가 매일 아침 기도 드릴 때 다음과 같은 내용이 꼭 포함됩니다. “오늘도 저를 주님의 사랑의 통로, 평화의 통로, 진리의 통로, 치유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이는 제가 사랑을 하고, 제가 평화를 일구고, 제가 진리를 구현하고, 제가 치유를 하는 게 아님을 매일 확인하는 것입니다. 자칫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저 자신이 한다는 착각에 빠질 위험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그 일들은 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는 것입니다. 저는 다만 하나님의 도구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구로 쓰임 받는 즐거움을 허락해 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버리는 몸짓이고, 또한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시려는 기원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묻혀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묻혀서 하나님 중심적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내 욕망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현실에 반응하시기를 바랍니다. 더러 부끄러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걸 묻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의 근심과 걱정도 하나님께 묻고 편안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존재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묻혀서 땅을 살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여러분에게 하늘 신비가 여러분의 인생 여정을 곱게 수놓아 갈 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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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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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