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자 동 로 그 인 :

772,

4/39

노희담

평화로운 무사 (롬10:2-3)

    갑돌이가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갑돌이는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갑돌이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왜 당신은 부인에게 그렇게 인색하게 굽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군요. 나는 관대한 사람이고 마음이 넓은 사람입니다.” 갑돌이는 화가 났습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반대하면 화가 나지요. 화가 난 갑돌이가 말했습니다. “변명하지 마시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소. 당신이 부인에게 너무 잔인하다고 말이오. 당신 부인은 매일매일 쓸 돈까지도 거지같이 구걸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화를 내신다면 더 이상 변명은 않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은 말하게 해 주시오.” 갑돌이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주제에 또 무슨 할 말이 있소?”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부터 갑돌이는 그 사람과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매우 못마땅한 겁니다. 하루는 갑돌이의 친구가 갑돌이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그 문제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네. 자네의 비난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이었지. 그런데 왜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건가?” 갑돌이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근거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상관없는 일이네. 시간 문제일 따름이야. 두고 보게. 조만간에 그는 결혼할 것이고, 그 때 그는 내가 말한 것처럼 자기 아내를 대할 것이네. 내가 옳았다는 게 판명될 게야. 나는 진실을 말했어.”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에 근거하여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겁니다. 거기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정보임이 드러났을 때 쉽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게 드러나게 되면, 자신의 에고가 크게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게 되면, 에고는 더 손상을 입게 됩니다. 1차 손상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2차 손상은 자기 선택의 문제입니다. 스스로 선택하여 에고의 손상을 입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대신 이 문제를 미래로 넘깁니다. 언젠가 자신의 판단대로 상황이 전개되기를 고대합니다. 어쩌면 남 몰래 기도할 지도 모릅니다. 한편 세상사는 워낙 가변적입니다. 그래 과거에 자신이 판단한 모습이 부분적이나마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뛸 듯이 기뻐합니다. 과거에 입었던 에고의 1차 손상을 회복하는 겁니다. 그런데 끝내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는 쓸쓸하게 죽어갑니다.

    갑돌이는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몹쓸 남편 운운 하며 화까지 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에고가 크게 손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게 되면 에고가 2차 손상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미래로 넘겼습니다. 어차피 그 사람이 결혼은 할 테고, 그 때 몹쓸 남편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갑돌이는 그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그의 결혼생활을 예의 주시할 것입니다. 제발 몹쓸 남편이 되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자기 아내에게 몹쓸 짓을 하게 마련입니다. 갑돌이가 그에게서 그런 모습을 부분적이나마 발견할 날이 곧 올 겁니다. 그 때 갑돌이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자기 말이 맞지 않았냐고 친구를 찾아가서 자랑할 겁니다.

    부분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갑돌이와 같은 패턴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개인적 차원이거나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사회적 차원이나 큰 주제에 대해서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명예가 실추될 정도의 사안에서는 어렵습니다. 명예가 걸린 문제와 관련하여 잘못을 시인하는 용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깊은 사랑을 하였습니다. 남자는 무사이고 여자는 평범한 아낙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혼인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옛날 무사들은 그럴 때도 칼을 차고 갑니다. 작은 배를 타고 섬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풍우가 일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빠져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자는 두려움에 몸을 떨면서 자기 남편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입니다. 무슨 대책을 세워 볼 생각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남편에 대해 살짝 야속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여자가 말했습니다. “뭐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돌부처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죠?” 남자는 잠시 아내를 바라보다가 칼집에서 칼을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예리한 칼날을 아내의 목에 대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두렵지 않소? 칼이 당신 목 가까이에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위험할 텐데.”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두렵다니요. 칼이 당신 손에 있잖아요. 칼이 당신의 손에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칼은 위험하지만, 그 칼을 나를 사랑하는 당신이 쥐고 있잖아요.” 남자는 칼을 다시 집어넣고 말했습니다. “폭풍우는 하나님의 손에 쥐어 있소. 폭풍은 위험하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오. 모든 걸 그분께 내맡기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오.”

    이런 내맡김을 가진 사람의 목숨을 하늘은 거두어갈까요? 내맡김이란 체념하는 게 아닙니다. 게으름이나 회피가 아닙니다. 내맡김은 영혼의 깊은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합니다. 내맡김이 되면 어떤 에너지가 생성됩니다. 그 에너지를 갖고 어떤 일을 하는 것과 그 에너지 없이 어떤 일을 하는 것의 결과는 아주 다릅니다.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에너지만으로 충분합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무사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자, 이제 갑돌이와 무사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갑돌이의 기운을 한 번 느껴 보시고, 이어 무사의 기운을 한 번 느껴 보십시오. 두 기운이 아주 다르지요? 갑돌이의 문제는 에고에 있다고 했습니다. 에고란 말 그대로 “나”입니다. 에고가 크다는 것은 내 안에 나가 크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옳아야 하고, 내가 인정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내맡김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내 안에 에고가 줄어들면 그 자리에 대신 하늘이 자리잡습니다. 그러면 내가 옳은 게 아니라 하늘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 내맡김이 가능합니다. 갑돌이는 에고로서 자신을 사는 사람이고, 무사는 하늘로서 자신을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는 열성이 있는데, 그 열성이 올바른 열성이 아니라 합니다. <자기 의>에서 나온 열성이라는 겁니다. 아니, <하나님의 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의>는 에고이고 <하나님의 의>는 하늘입니다. <의>는 옮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고에서 비롯되었다면 그 옳음은 옳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태어납니다. 누구나 자신의 100조개 세포 안에 삶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곧 두려움은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에고는 그 두려움을 미움이나 화로 바꾸어버립니다. 두려움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그 외부를 향해 화를 내는 겁니다. 자신 안의 두려움을 외부로 투사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개인적 관계에서 상대방을 미워하고, 또한 사회적 문제를 향해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러니 두려움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개인적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많이 미워하고 분노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 안에 깊은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사회적 문제로 화를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을 용기라 하지만, 그건 에고의 작동 원리를 잘 모르는 이해입니다. 진정한 용기에는 미움이나 화가 없습니다. 그리고 미움과 화는 한 짝입니다. 미움에는 화가 늘 따라다닙니다.

    누구나 두려움을 미움이나 분노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냥 두려워할 뿐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움이나 분노는 별로 없이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이 있고, 두려움은 별로 없이 분노만 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둘이 겉은 다르지만 속은 같은 겁니다. 물론 둘이 섞여 있지요.

    하늘에 내맡김은 두려움을 해결하는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미움이나 화를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내맡기는 사람은 미움이나 화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어 편안하고, 분노할 일이 없어 편안합니다. 폭풍우 앞에서 두려움이 없는 무사는 평소 분노도 없을 겁니다.

    만약 갑돌이가 신혼여행을 하다가 폭풍우를 만났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아마도 그는 몹시 화를 냈을 겁니다. 자기도 아내와 똑같이 두렵지만, 그걸 두려움으로 표현하지 않고 분노로 표현하였을 겁니다. 아내에게 두려워한다고 화를 내고, 만약 아내가 신혼여행을 섬으로 가자고 하였다면 더욱 아내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혹 신혼여행을 섬으로 가 보라고 누군가 추천했다면 그에게 화를 낼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필 이럴 때 폭풍우를 일으키는 하늘을 향해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낼 대상을 선정하는 일은 그에게 아주 쉽습니다.

    폭풍우 앞에서 분노하는 갑돌이와 편안한 무사,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자비를 신뢰하며 내맡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화로운 무사, 여러분이 그런 모습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