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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들이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버릴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토의하게 되었습니다. A가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버릴 수 없어. 어머니는 나를 낳아 주셨고 나의 생명은 어머니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거든. 다른 모든 것은 다 버릴 수 있어도 어머니만은 버릴 수 없어.” 이어서 B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내를 버릴 수가 없어. 어머니나 아버지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채 주어졌지만, 아내는 내가 선택했거든. 나는 아내에게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다른 사람은 다 버릴 수가 있어도 내 아내만은 절대로 버릴 수 없어.”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집을 버릴 수 없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또 다른 것을 말하였습니다.
갑돌이 차례가 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배꼽이 없이는 살 수 없어.” 친구들은 갑돌이의 좀 뜻밖의 말에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갑돌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종종 편안히 침대에 누워서 감자를 먹는데,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네.” 친구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배꼽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감자야 누구든 먹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이해를 못 하는군. 배꼽이 없으면 소금을 놓을 곳이 없어진다는 말일세.”
이것만은 버릴 수 없다고 할 때, 그것이 자칫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착은 이렇듯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말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대상은 버려질 수 있습니다. 꼭 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린 마음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대상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모, 배우자, 아이들, 돈, 집 등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좋은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집착은 비단 사람이나 물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범위는 훨씬 넓습니다.
갑돌이가 갑자기 부자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것입니다.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그 또한 재산을 과시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라에서 제일 훌륭한 화가를 불러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기억하시오. 절대로 이 말을 잊지 마시오. 그 그림 속에는 반드시 진주가 들어 있어야 하오.” 그의 아내는 진주와 그 밖의 많은 보석으로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보석들이 반드시 그림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그림 속에서 어떻게 보일 것인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단지 진주와 보석이 그려져 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얼마 후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갑돌이가 말했습니다. “아주 좋군. 정말 좋아. 그런데 하나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소. 가슴을 좀더 작게 하고 보석을 더 많이 그릴 수는 없소?”
어떤 귀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것을 버렸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또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플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랑거리’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랑거리’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것은 아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랑할 기회가 찾아오면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때로는 교묘히 자랑할 때와 장소와 대상을 찾는다면, 이는 ‘자랑거리’에 집착하는 겁니다. 집착은 자랑하는 일에도 해당됩니다. 그리하여 ‘자랑거리’를 기회를 만들어 반복하여 자랑하고, 만일 기회를 만들지 못 하게 되면 답답한 마음으로 고통당하게 됩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을 아십니까? 항아리 속에 바나나를 넣어 둡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는 위의 구멍이 아주 작습니다. 원숭이가 손을 편 상태면 항아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을 수 있고, 주먹을 쥔 상태면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바나나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손을 펴서 간신히 항아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바나나를 움켜잡습니다. 그리고 손을 빼려 하는데 빠지지 않습니다. 사냥꾼이 가까이 다가와도, 바나나를 움켜쥔 손을 펴지 않아 결국 잡힌다는 겁니다.
무엇이든 계속 움켜쥐고 있으려 하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사람이나 물건이든, 뭔가를 자랑하고픈 마음이든 말입니다. 집착이란 무언가를 계속 움켜쥐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집착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 지금 어떤 것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흔히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가 있고 그리고 ‘집착’이 있는데, 이 둘은 각각 다른 존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집착’이 ‘나’에게 들러붙어 있다고 이해합니다. 그리하여 ‘집착’을 ‘나’로부터 분리하여 저 멀리 내동댕이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진실은 이러합니다. ‘나’와 ‘집착’은 각각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마치 ‘나’와 ‘내 머리’를 분리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집착’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나’는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나’가 곧 ‘집착’이라고 이해하는 겁니다. 현재 ‘나’가 ‘집착’이라는 경험을 하는 중이라고 이해하는 겁니다. 이 둘이 이 순간 하나라고 이해하는 겁니다. 곧 ‘집착’하는 ‘나’를 허용하는 겁니다. 그리하면 ‘집착’이 나를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게 됩니다. 신기하게 말이죠.
다시 말해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집착’이 됩니다. 이는 비단 ‘집착’의 문제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내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면, 이것이 바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그 자체가 ‘두려움’입니다. 지금 ‘나’가 ‘두려움’과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상태를 허용하면, ‘두려움’은 ‘나’를 위협하는 일을 멈춥니다. 그 밖에 미움, 질투, 원망 등도 모두 그러합니다. 적어도 현재는 <내가 그것들임>을 깨달음으로써만 문제가 풀려나게 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원리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이원주의’에서 ‘비이원주의’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세상에는 기적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다.”(There are two ways of living your life; One is as though nothing is a miracle, the other is as though everything is a miracle!) 일상의 작은 현상 하나도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고,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말했습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대신에 일상의 작은 현상도 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삶을 사는 겁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떠오르는 태양, 푸른 하늘, 초승달, 춤추는 나무이파리들, 또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행복해 하는 엄마의 모습, 해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 뭐 이런 것들과 지금 하나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들 안에서 신비를 느끼는 겁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집착하는 자신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허용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하늘에 내맡깁니다. 이제 에너지를 현재에 집중합니다. 일상의 작은 현상도 기적으로 맞이하는 것, 그것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지금 손에 왜 쟁기를 잡고 있습니까? 밭을 갈기 위해서입니다. 쟁기로 밭을 갈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다본다는 겁니다. 쟁기 잡은 손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집착하는 것들은 모두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에너지가 과거에 가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집착하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도 에너지가 과거가 가 있는 모습입니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재 손에 잡은 쟁기로 눈앞의 밭을 가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가 있는 에너지를 거두어 몽땅 현재에 쏟는 겁니다. 예수님은 그런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자신 안에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 어두운 면을 제거하려 하거나,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려 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그 어두운 면도 나의 분신이고, 고통도 현재 나를 이루는 부분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거기에 빨려들지도 않고 거기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하지도 않는 겁니다. 그냥 현재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허용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에너지를 현재를 사는 일에 붓습니다. 일상의 작은 현상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깊이 느끼는 겁니다. 그것을 <현재로 내려가는 여행>이라 부릅니다. 예수께서 그 여행으로 우리를 초청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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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