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우 절망적이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찌해야 합니까?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척간두’란 아주 높고 기다란 막대기 혹은 장대의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를 확장해 보면 아주 높은 봉우리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끝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진일보’하라 함은, 천길 벼랑에서 한 발 내딛어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으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진일보’를 하나님께 내맡김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세상이 썩었고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멸하시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땅에 대홍수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만은 예외로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충직한 노아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꼭 그대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대홍수 기간 동안 1년 남짓 방주 안에서 기거하였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방주를 흔히 ‘구원의 방주’라고 부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방주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전국에 여럿 있습니다.
한편 방주는 히브리어로 테바라고 합니다. 그래서 테바교회라고 이름을 지은 교회도 있습니다. 이 테바라는 단어는 성경에 딱 두 차례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 한 번 나오고, 또 한 번은 출애굽기 2장에 나옵니다. 출애굽기 2장 1절에서 10절까지는 모세의 탄생에서부터 아기 모세가 이집트 공주의 양자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다시피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가 날로 불어나는 것이 이집트 왕에게 큰 위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태어난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1절에서 6절까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레위 가문의 한 남자가 레위 가문의 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 여자가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 남이 모르게 설 달 동안이나 길렀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서, 갈대상자를 구하여다가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 오게 하였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이 이야기에서 석 달 된 모세를 담은 상자, 그것이 바로 테바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를 담은 상자, 이 둘을 표현할 때 테바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길이가 축구장 보다 30m나 더 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청나게 큰 배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담은 상자는 길이가 1m도 채 안 될 것입니다. 도대체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어떤 공통점이 있기에 겉으로 보기에 전혀 달라 보이는 둘을 같은 단어로 표현하였을까요?
테바는 배가 아니라 상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배(boat)와 상자(box)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배에는 조종장치가 있습니다. 노，삿대，돛，닻，키 등을 조종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엔진으로 배를 운행합니다. 그러나 상자는 그냥 물 위에 떠 있는 것입니다. 조종할 아무런 장치도 없습니다. 테바는 동력장치가 없는 상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노아의 방주는 배가 아니라 상자입니다. 창세기 7장 18절은 대홍수가 난 후 방주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물이 불어나서 땅에 크게 넘치니, 방주가 물 위를 떠다녔다.> 노아의 방주는 어떤 동력장치도 없이 그냥 물 위를 떠다닌 것입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다닌 것입니다. 그것은 테바였습니다.
방주를 국어사전은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만든 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노아 일행이 탄 테바를 방주라 번역한 것은 그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입니다. 노아 일행이 엄청나게 큰 상자 안에 타고 있었다고 표현하면 어색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큰 배에 타고 있었다고 번역한 것입니다. 하지만 테바는 배가 아니라 상자입니다.
그렇다면 이 테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노아 일행과 아기 모세가 처한 상황은 동일합니다. 죽음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그 위기 상황 앞에서 동력장치가 없는 테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선 모세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사내아이를 낳은 모세의 부모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갓 태어난 아이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얼마라도 아이와 함께 있고 싶어서 석 달 동안 몰래 키웠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했습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이를 갈대상자에 담아 강가의 갈대 사이에 놓아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바람이 많이 불거나 또 어떤 변수에 의해 갈대상자가 떠내려가는 겁니다. 떠내려가지 않도록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지만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떠내려가면 모든 일이 끝장입니다. 둘째는 아무도 갈대상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는 굶어 죽게 됩니다. 셋째는 누군가 발견했지만 이스라엘의 사내아이인 줄 알고 죽이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집트 왕의 엄명입니다. 넷째는 누군가 발견하여 이 아이를 살리는 겁니다. 모세의 부모는 바로 이 네 번째 경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합니다. 가능성이 1%도 안 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하나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아이의 운명을 하나님께 내맡겼습니다.
이제 노아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1년 남짓 동안 방주에 타고 있는 노아가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방주는 심판의 현장 속에서 노아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 방주는 그냥 떠내려갈 수 있을 뿐입니다. 그 결과를 하나님께 내맡긴 채 말입니다. 방주의 운명은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노아의 테바와 모세의 테바는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물건입니다. 다만 하나님께 내맡길 뿐입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백척간두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에 내맡김, 이것이 테바의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내맡긴다고 할 때 그것은 하나의 전제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원리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입니다. 곧 스스로 최선을 다한 후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 내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님께 내맡기는 것은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다시 모세의 부모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자마자 갈대상자에 담아 강에 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께 내맡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석 달 동안 아이를 몰래 키웠습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석 달 동안 아이를 몰래 키운 것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공주가 목욕을 하기 위해 강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때가 언제쯤 되었을까요? 추운 겨울에 강에서 목욕할 수 있습니까? 봄과 가을도 수온이 낮아 공주의 신분으로 강에서 목욕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더운 여름이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태어난 때는 봄이 됩니다. 만약 모세의 부모가 아이를 낳자마자 강에 두었다면, 아이가 공주에게 발견될 수 없습니다. 봄에는 목욕하기 위해 강으로 가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기 모세가 발견되기 위해서는, 공주가 강에서 목욕할 수 있는 더운 때라는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물론 모세의 부모가 그런 걸 계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공주가 아이를 구해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만 아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석 달 동안 숨죽이며 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주가 강에서 목욕할 수 있는 더운 때라는 조건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아이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이어져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공주가 목욕을 왜 강으로 하러 갔겠습니까? 바로의 궁전에는 목욕탕이 없어서 갔겠습니까? 궁전의 목욕탕이 강보다 못 해서 갔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입니다. 또한 강으로 갔다 하더라도 갈대 숲 속에 있는 상자를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상자 안에서 사내아이를 발견하고 죽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불쌍한 마음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부모가 최선을 다한 결과 공주가 강에서 목욕할 수 있는 때에 정확히 맞춰 모세의 테바를 강에 두게 되었고, 그 바탕 위에서 하나님께서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이 일을 추진시키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세가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모세 부모가 최선을 다한 것과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가 합해진 결과라 하겠습니다. 곧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것입니다.
노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는데 그는 충직성으로 최선을 다하여 만들었습니다. 만약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 나중에 물이 조금이라도 샜다면 방주는 침몰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가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노아가 충직성으로 최선을 다해 방주를 만든 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해진 결과라 하겠습니다. 노아의 경우에서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내려 보내 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신으로 갇혀 계셨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민족신을 우리가 믿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고 내맡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마을에서 7년 동안 마을사람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신부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신부님은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그 마을에 가신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한편 신부님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몰랐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신부님이 하나님을 몰랐을 것이고, 그랬다면 톤즈 마을 사람들도 하나님을 몰랐을 겁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거룩한 씨앗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그토록 소중한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이르는 징검다리와 같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태어나신 예수님을 늘 마음에 품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노아와 같은 충직성으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사실을 믿으며, 시련 앞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힘을 동력장치로 삼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인생의 흐름을 하나님께 내맡기십시오. 테바를 타고 가는 인생을 선택하십시오. 오늘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이 구원의 방주를 타고 가는 여러분의 인생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
772, 
5/39 
노희담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