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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 북쪽 연합군과 싸워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북쪽 연합군이 빼앗아 간 모든 재물과 사로잡아 간 사람들을 되찾았습니다. 아브람이 일행을 거느리고 돌아오는데, 소돔 왕이 사웨 벌판으로 나와 아브람을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주시고, 물건은 그대가 가지시오.” 이에 대해 아브람은 말하였습니다.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소돔 왕의 됨됨이를 알게 된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재물을 하나도 안 갖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참 아까운 일이겠지만, 아브람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지니는 힘입니다.
이제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함께 싸우러 나간 사람들 곧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에게로 돌아갈 몫만은 따로 내놓아서, 그들이 저마다 제 몫을 가질 수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은 자신을 도와 함께 싸워준 동맹군에게는 그 몫을 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은 실오라기 하나 신발 끈 하나도 가지지 않겠지만, 그들에게는 재물을 나눠 주겠다는 겁니다. 이 또한 매우 훌륭한 자세입니다. 만약 아브람이 동맹군에게 너희도 나처럼 전리품을 하나도 갖지 말라고 했다면, 그들은 퍽 난처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뜻을 받아들이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목숨 걸고 싸웠는데 전리품을 하나도 갖지 못하니 말입니다. 반대로 그 뜻을 거절하는 것은 앞으로의 상호 관계를 위해 좋지 않은 일입니다.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거절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자신은 재물을 안 가지면서 동맹군은 재물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은, 그들에 대한 섬세하고 따뜻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전리품으로 획득한 재물을 몽땅 소돔 왕에게 줘 버리는 행동은 참으로 훌륭한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행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재물을 안 가지면서 동맹군은 재물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동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의로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이 자기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를 비난하고 폄하하는 겁니다. 이는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의로운 길을 걷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본받아 스스로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되면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자기중심적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 상대방이 자기 뜻을 따르지 않았다고 그를 비난하고 폄하한다면, 자신이 의로운 길을 걸어서 얻은 점수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삼일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는 날이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형무소로 찾아와 석방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때 선생은 딱딱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석방되는 사람을 환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석방되는 사람이 되시오.” 그 자리가 얼마나 썰렁했겠습니까? 자신의 고생을 위로하고 석방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질책을 한 것입니다. 좀 따스하게 대해줄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영혼의 수준이 다릅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수준에 맞는 삶을 사는 게 좋습니다. 자신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하지만, 현재는 자신의 수준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예컨대 내 수준이 5인데, 수준이 8인 사람과 같이 살려 하면 좋지 않다는 겁니다. 그리하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반대로 내 수준이 5인데, 수준이 2인 사람에게 자기처럼 살라고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겁니다. 나는 내 수준대로 사는 것이 좋고, 또한 상대방의 수준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의 수준이 차츰 성장하도록 함께 노력하면서 말입니다.
아브람이 전리품을 안 갖겠다고 한 선택은 매우 수준 높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당시 사회의 일반적 수준은 승자가 전리품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의 수준이 사회의 일반적 수준보다 높았던 것인데, 아브람은 또한 일반적 수준을 존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동맹군이 전리품을 갖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옛 그리스-로마 시대의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신들에게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기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전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교도 친구의 초청으로 그 식사 자리에 와 앉아 있게 되는 일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지 않더라도, 식사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전에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의 일부는 시장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도 그런 고기를 먹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 하는 문제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 사이에서 제기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제기된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견해를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고린도전서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바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른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A는 그런 지식을 갖고서 자유롭게 고기를 먹습니다. 그런데 B는 그런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 A를 보며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바울이 한 말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 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고전8:9) 만약 그 약한 사람이 시험에 들게 되었다면, 그것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그가 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고전8:13) 개인의 자유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말을 달리 표현하자면 타인의 낮은 수준에 자기 수준을 맞추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의 경우는 자기 수준대로 행동하면서 타인의 수준을 존중해 준 것인데, 바울의 경우는 자기 수준을 타인 수준에 맞춘 것입니다. 물론 아브람과 같이 해야 할 경우가 있고, 바울과 같이 해야 할 경우가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자기 수준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수준을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이 문제를 좀 더 확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수준의 차이’라 하면 이는 높고 낮음이 있는 수직적 개념입니다. 그런데 ‘기준의 차이’라 하면 이는 높고 낮음이 없는 수평적 개념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타인과 수준의 차이를 만나기도 하지만, 또한 기준의 차이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의 차이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선 ‘기준’이라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음력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해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여 양력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자기 생일을 음력으로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양력으로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 음력과 양력은 바로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번 주 수요일에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그날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기준에 따라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투표하지 않고 기권할 것인데, 명확한 기준을 찾지 못해서이거나 혹은 나름대로 어떤 기준에 의해 기권을 선택할 것입니다.
음력과 양력의 경우처럼 기준의 차이가 별로 문제가 안 되고 상호보완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 선거처럼 기준의 차이가 서로 충돌하며 큰 불화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때 기준의 차이라는 말은 관점의 차이나 입장의 차이라는 말과 그 의미가 비슷합니다.
기준의 차이가 불화를 일으키는 것은, 서로 자기 기준에 상대방의 기준을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기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준의 차이가 있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상대방의 기준을 존중해 주는 겁니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상대방의 기준을 존중해 주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자기 기준대로 할 때 세상에 평화가 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상대방을 틀린 것으로 보지 말고 나와 다른 것으로 보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그런데 그 말을 실천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직후에 자신과 판단 기준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즉각 나와 너는 다르다는 자세가 아닌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자세로 임하게 됩니다. 많은 평화운동이 바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자세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그 평화운동의 성과가 크게 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그 평화운동이 갈등과 반목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평화를 위해 우선 상대방의 기준을 존중해 주는 풍토가 뿌리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기준의 차이를 지닐 때 내 기준을 상대방의 기준에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내 기준대로 행동하되 상대방의 기준을 존중해 주는 겁니다. 그리할 때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는 평화운동’이 됩니다. 그런데 ‘미움과 분노로 하는 평화운동’이 많다는 겁니다.
한 사람 안에는 수많은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을 잣대라고 표현해도 되겠습니다만, 정치를 보는 기준, 경제를 보는 기준, 교육을 보는 기준, 남자를 보는 기준, 여자를 보는 기준, 노인을 보는 기준, 어린아이를 보는 기준, 부자를 보는 기준, 가난한 사람을 보는 기준, 건강을 보는 기준, 음악을 보는 기준, 그림을 보는 기준 그리고 하나님을 보는 기준 등 정말 수많은 기준이 있습니다. 부부의 경우 서로의 수많은 기준 중에서 비슷한 것이 많으면 그래도 화목할 테고, 다른 것이 많으면 갈등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양적인 차원과 더불어 질적인 차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영향력이 큰 기준과 작은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정치에 대한 기준은 영향력이 매우 큰 편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데 부인은 민주당을 지지한다면, 비슷한 기준이 많더라도 화목한 부부가 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서로 기준이 다른 조건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상대방의 기준을 존중해 주는 자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갈등과 반목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삶을 살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수준도 차이가 나고 기준도 차이가 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아브람과 바울의 삶의 자세는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곧 어떤 경우에는 자기 수준대로 행동하되 동시에 타인의 수준을 존중하는 겁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 수준을 타인의 수준에 맞추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기준대로 행동하되 상대방의 기준을 존중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타인의 수준과 기준을 존중하기 위해 하나님 중심적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와 수준과 기준이 다른 타인을 상대할 때, 둘의 관계로 보지 않고 하나님을 포함한 셋의 관계로 보는 겁니다. 타인을 대할 때 늘 그 자리에 하나님을 모셔 와야 합니다. 그렇게 셋의 관계에서 타인을 대하면, 그의 수준과 기준을 존중하기가 한결 수월해지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적 삶을 뿌리로 하여 늘 타인의 수준과 기준을 존중하여, 우리가 이 땅의 사랑과 평화의 도구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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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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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담
전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