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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기쁜 일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기쁨은 우리네 삶에 큰 활력을 주고 행복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쁜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을 구비하라는 뜻입니다. 하기야 기쁜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뜻대로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만약 기쁜 일이 좀처럼 안 생기면, 우리의 삶은 매우 고단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경우라도 기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자,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여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다 끝난 것일까요? 예컨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기뻐한다니까요. 그게 바로 항상 기뻐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제 그런 상태가 되었으니 문제는 다 끝난 것이 아니겠냐는 말씀입니다. 아니, 아직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의식 발달의 단계에 대해 여러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전합리주의-합리주의-초합리주의>라는 개념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쁨을 느끼는 것도 의식의 수준에 따라 그 모양새가 달라집니다. 오늘은 <전인습-인습-후인습>이라는 개념으로 의식의 수준을 구분하고, 각각의 수준에 따른 기쁨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습이란 예전부터 내려와 몸에 익은 관습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 단계의 기준으로 바로 이 인습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 단계를 크게 <전인습-인습-후인습>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첫째로 전인습적 수준의 기쁨입니다. 이는 순전히 자신에게만 한정된 기쁨입니다. 자기중심적 기쁨이요, 자기몰입적 기쁨이요, 자기찬미적 기쁨입니다. 다시 말해서 타인의 형편과는 무관한 기쁨입니다. 타인이 옆에서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자신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둘째로 인습적 수준의 기쁨입니다. 이는 ‘나’만의 기쁨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입니다.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사회중심적인 기쁨입니다. 자기만 행복하다고 기쁜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행복하고 기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후인습적 수준의 기쁨입니다. 둘째 수준과 비교할 때 타인의 범위가 크게 확장된 것입니다. 곧 가족이나 친구, 종교, 국가에 한정되지 않고, 인종이나 성별 또는 신념에 관계없이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뻗어나갑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가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슬퍼집니다. 그러다 그들의 고통이 좀 완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합니다.
어린아이들은 대체로 전인습적 기쁨 수준입니다. 어른이 되면 인습적 기쁨 수준으로 자라지만, 인습적 기쁨 수준도 그 안에 단계가 있습니다. 예컨대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전형적인 인습 수준입니다. 자식의 기쁨을 전제로 하여야만 자신의 기쁨이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많은 경우 남의 집 아이들의 기쁨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니까 그 어머니는 자기중심적 기쁨에서 가족으로 기쁨의 범위가 확장되었지만, 거기에서 멈추고 있는 겁니다. 다시 가족에서 교회까지 확장됩니다. 그래 우리 교회가 부흥하면 기쁩니다. 하지만 다른 교회가 아픔을 겪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다시 기독교 전체로 확장됩니다.
여기까지가 둘째 단계인 인습적 기쁨의 범위입니다. 그는 타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입니다. 타종교에 대해 광신적 거부감을 가집니다.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을 종교다원주의라 부르는데, 종교다원주의는 사탄의 짓이라 여기며 배척합니다.
민족주의는 둘째 단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 하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수많은 순국열사들을 기립니다. 하지만 이런 애국심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도 합니다. 민족주의는 흔히 제국주의에 저항하지만, 그 둘의 뿌리는 같다고 하겠습니다.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그 역시 둘째 단계를 넘지는 못합니다.
셋째 단계인 후인습적 수준은 민족이나 이념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지구의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나 자신의 문제로 여깁니다. 예컨대 A는 김연아가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물리치고 우승하면 기뻐합니다. 아사다 마오가 넘어지면 기뻐합니다. 김연아가 우승하지 못하면 마음이 몹시 불편합니다. 그는 인습적 수준인 것입니다. 그런데 B는 두 사람이 모두 실수하지 않고 멋진 연기를 보여주면 기뻐합니다. 설령 김연아가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는 후인습적 수준인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를 교회에서 함께 보았습니다. 1994년 아프리카에 있는 르완다라는 나라에서 100일 동안 1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외국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르완다에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있는데, 두 종족 사이의 싸움으로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화는 그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죽는 끔찍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폴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1,268명의 목숨을 구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폴은 실존 인물이고 폴의 이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의식의 수준에 따라 다를 겁니다. 첫째 수준인 사람은 아마도 이 영화를 싫어할 겁니다. 자신의 기쁨을 충족시켜 주지 않고 오히려 언짢은 기분만 안겨 주니까요. 둘째 수준인 사람은 영화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그 연민 이상으로 분노를 가질 겁니다. 르완다 사태의 근본 원인은 르완다를 식민통치했던 벨기에에 있다고 생각하며,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를 터뜨릴 것입니다. 즉 연민보다 분노가 더 클 것입니다. 셋째 수준인 사람은 깊은 연민으로 영화를 볼 것입니다. 르완다의 난민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아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려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더 깊이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웃의 범위입니다. 이웃은 바꿔 말하면 타자입니다. 가장 가까운 타자는 가족입니다. 그러니까 가족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도 이웃사랑을 한 셈이 됩니다. 이웃사랑의 범위가 가족에서 끝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제 그 범위가 좀더 확장되면 우리 교회입니다. 좀더 확장되면 기독교입니다. 혹은 자신의 고향입니다. 즉 요즘 시끄러운 충청도나 전라도나 경상도입니다. 좀더 확장되면 우리나라입니다. 더 나아가면 북한을 포함하겠지요.
다시 말해서 이웃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문제입니다. 곧 이웃의 경계가 어디냐는 문제입니다. 이웃의 경계가 내 고향 충청도이면 충청도 사람에 대해서는 내 몸처럼 사랑합니다. 그러나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 이웃이 아닙니다. 이웃의 경계가 우리 민족이면, 미국이나 일본은 내 이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르완다도 내 이웃이 아닙니다. 르완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후투족의 이웃 경계는 후투족까지입니다.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투치족은 이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죽여야 할 대상입니다.
이제 이웃의 경계가 전 지구로 확장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내 몸처럼 사랑해야 할 내 이웃이 됩니다. 미국도 일본도 르완다도 내가 사랑해야 할 내 이웃입니다.
본문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율법교사는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피 흘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이웃의 경계가 인종이나 국가가 아닙니다. 누구라도 고통당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이웃인 겁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의 범위는 초인습 수준입니다.
초인습 수준의 존재는 항상 기쁠 수 없습니다. 전 세계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언제나 고요한 기쁨이 은은히 흐르고 있습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의 표면이 거친 파도로 일렁이지만, 그 바다의 깊은 속은 고요한 것과 같습니다. 바다와 같은 존재로서 그는 표면의식으로는 전 세계의 고통당하는 이웃을 생각하며 슬퍼하지만, 그러나 그의 심층의식은 늘 고요한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표면의식으로 항상 기쁠 수 없는 것과 심층의식으로 항상 기쁜 것이 한 짝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이기에 그의 표면의식에서 하나님의 현현으로서의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느끼며 슬퍼하지만, 역시 그는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이기에 그의 심층의식에서 기쁨이 가득합니다. 즉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쁠 수 없고, 동시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쁩니다. 이 위대한 역설을 살아가는 사람이 후인습 수준의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후인습 수준의 최고봉에 이른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된 존재로서 그분은 표면의식 차원에서 화를 냈고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심층의식 차원에서 늘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내면의 기쁨이 커감에 비례하여 외면에서 연민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커갑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런 경로를 밟으며 후인습 수준의 존재로 자라나라 하십니다. 거룩한 슬픔과 신비한 기쁨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자라나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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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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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담
여신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