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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에게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그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의의 천사’를 불러 물으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에서 가장 으뜸 되는 피조물로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 인간들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는 불의가 판을 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거룩의 천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거룩의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 인간들은 이 세상을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 놓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째로 ‘빛의 천사’를 불러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빛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절대로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 됩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을 어둠으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번째로 ‘긍휼의 천사’를 불러 역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긍휼의 천사는 다른 천사들과는 전혀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 이 세상은 불의하고 더러워지고 어둠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불의와 더러움과 어둠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저는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날로 새로워지고 성장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을 꼭 닮은 존재가 되도록 돕겠습니다.”
의의 천사, 거룩의 천사, 빛의 천사의 말은 맞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불의와 더러움과 어둠이 많이 있습니다. 불의와 더러움과 어둠을 만든 장본인은 바로 우리들 인간입니다. 그 결과 고통당하는 것도 인간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지 않는 것이 옳았을까요?
오래 전 부산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밤늦게까지 회진을 돌다가 원장실로 돌아온 의사에게 한 남자가 매달리며 하소연했습니다. 치료비를 내지 못해 퇴원을 못 하고 있는데, 내보내만 준다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반드시 갚겠다고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의사가 그의 말을 급히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누가 듣겠어요. 그런 얘기는 조용조용히 해야지, 그렇게 크게 해서 어쩌려고 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언제 도망칠 겁니까? 내가 그 시간에 맞춰 병원 뒷문을 살짝 열어 놓겠소. 참, 그리고 내가 문 열어줬다고 소문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이 약속만은 지켜주세요.”
다음 날 없어진 환자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지만, 여느 때처럼 범인이 병원장이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병원 직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다른 병원을 전전하다 가산을 모두 탕진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그 병원이었고, 치료비를 낼 돈이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찾아가는 것이 그 병원의 원장실이었습니다. 그러면 원장은 그런 사정을 안타까워하다가, 환자의 치료비 전액을 자신의 월급에서 대신 내 주는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 의사는 19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스승은 경성의전 교수직과 대전도립병원장 중에서 선택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치료비가 없어 평생 의사 한 번 못 보고 죽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면서 스승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평양의 한 병원에서 일하며 무의촌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말년에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습니다. 그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줄곧 독신으로 살다가,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의사 생활을 60년 동안 했는데 통장에 천만 원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간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종종 사람들로부터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보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그를 잘 아는 어느 벗이 이런 비문을 지어 그에게 바쳤습니다.
<1911년에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고, 1995년 서울에서 승천한 의학박사 장기려,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 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공원에 잠들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지 않는 것이 옳았을까요? 의의 천사와 거룩의 천사와 빛의 천사의 말도 맞았지만, 긍휼의 천사의 말도 맞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어, 날로 새로워지고 성장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마음을 꼭 닮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니까요.
장기려 박사님은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같은 신앙인으로서 우리도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우리도 어떻게 하면 날로 새로워지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꼭 닮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백을 가지는 겁니다. “저는 당신의 것인 이 모든 것이 제 것인 줄로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들이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더 이상은 그것들이 제 것인 양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병원에서 받는 월급의 액수보다 가불받는 액수가 늘 많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 가불을 받았을까요? 병원비 못 내는 환자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가불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이 없이 병원 옥상에 있는 작은 옥탑방에서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의사 생활 시작 때부터 의사 생활 말년에 이르기까지 늘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합니다. 곧 돈이나 집이나 자기 몸을 ‘나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돈도 하나님의 것으로 여겼기에 아낌없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쓸 수 있었고, 자기 몸도 하나님의 것으로 여겼기에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분은 진정으로 ‘나의 것’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분입니다. 그 결과 위대한 사랑을 구현하였습니다.
우리는 아직 장박사님과 같은 삶을 살지 못합니다. 움켜쥐고 있는 ‘나의 것’이 많습니다. 또한 아직 ‘나의 것’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며 ‘나의 것’을 더 늘리려는 욕망도 있습니다. ‘나의 것’을 더 늘리는데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며, 마음에 결핍감을 안고 그의 뒤를 좇으려 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는 이웃사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틈틈이 이웃사랑을 행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조건 때문에 늘 한계를 지닙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모두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결코 자신의 모습을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줄을 뻔히 알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 모습으로부터 성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꼭 닮은 존재가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음을 알고 창조하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성장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면, 하나님은 은총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총을 신뢰하며 현재의 모습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겁니다.
내맡김이란 무엇입니까? 우선 ‘맡긴다’는 말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이유에 의해서 내 물건을 내가 갖고 있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대신 갖고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이가 세배하고 받은 돈을 엄마에게 맡깁니다. 혹은 누군가에게 어떤 일의 권한이나 책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김경주 집사님이 올해 여신도회장직을 맡았습니다. 이제 내맡김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상대방에게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는 것 같은 자세입니다. 곧 내맡김은 맡김보다 훨씬 강한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내맡김은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나의 뜻, 나의 기대, 나의 바람, 나의 짐, 나의 근심 걱정, 현재의 내 형편, 그밖에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맡기는 겁니다. 그것을 순복(順服, surrender)이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의 길입니다. ‘나’와 ‘나의 것’은 사라지고 하나님만 있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나의 것’은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앎에 눈뜨게 됩니다. 그리하면 참다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나의 것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나의 것’이라는 의식이 없음을 드러내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앞의 ‘나의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 할 때 ‘나의 것’과, 뒤의 ‘아버지의 것은 모두 나의 것’이라 할 때 ‘나의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앞의 ‘나의 것’은 소유의 의미를 갖지만, 뒤의 ‘나의 것’에는 소유의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앞의 ‘나의 것’이 하나님에 의해 깨끗하게 세탁되어 소유의 의미가 전혀 없는 ‘나의 것’이 된 것입니다.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저 푸른 하늘은 나의 것이야.”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유란 배타성을 지니는 것인데, 푸른 하늘이 배타적으로 내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온 우주가 나의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소유의 차원에서 ‘나의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면, 온 우주가 ‘나의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수준으로 사셨던 분입니다. ‘나의 것’이 없었으니 무엇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사셨고, 온 우주가 ‘나의 것’이었으니 아무것도 갖지 않았지만 진정한 부자로서 넉넉한 삶을 사셨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바로 그런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사셨던 것입니다.
내 몸, 내 가족, 내 지식, 내 소유물,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는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대해 내 것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진 것을 버리거나, 주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소유와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은, 그것이 재물이든 무형의 은총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관리하고, 자신을 위해 유익하게 사용하고, 그러다 누군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낌없이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그렇게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고, 그 권한을 사용할 때마다 기뻐하십니다.
마침내 “내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넉넉한 영혼의 부자로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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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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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담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