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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하는 철학자는 올바른 지식을 얻으려 할 때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네 가지 우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으로서 인간의 입장에서만 자연이나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동굴의 우상으로서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여 주관적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시장의 우상으로서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 없이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극장의 우상으로서 권위나 전통을 아무런 비판 없이 맹신하는 것입니다. 베이컨은 이러한 우상이 편견을 만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너무 한쪽에 치우친 생각이란 뜻입니다. 인간의 편에서 생각하는 것, 주관적 생각, 타인의 말, 권위나 전통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그것들에 치우치면 편견, 곧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우상을 섬긴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너무 치우치게 되면 그것도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곧 집착하게 되면 우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바울은 아테네에서 온 도시가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하였습니다. 아테네에 대한 자신의 기대가 어그러지자 화가 몹시 난 바울은, 광장으로 나가서 매일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 중에는 에피쿠로스 학파도 있었고 스토아 학파도 있었습니다. 아테네가 어떤 우상에 빠져 있었을지 본문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쾌락의 우상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모든 현상은 우연에서 생기고, 죽은 다음의 삶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신은 인간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신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최고 목적은 쾌락 추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인생에서 쾌락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삶의 최고 목적이 될 때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둘째 지식의 우상입니다. 스토아 학파는 에피쿠로스 학파와는 달리 모든 현상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신의 존재를 믿었는데, 그 신은 모든 것 속에 있는 자연신이었습니다. 이른바 범신론입니다. 또한 이들은 금욕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들은 운명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데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식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좀더 편리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더 많은 지식을 추구하였습니다. 마침내 지식이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볼 수 없었고, 또한 이웃과의 관계마저 단절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얻은 단편적 지식 때문에 엘리트 의식에 안주하며, 이웃들을 무식한 사람들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인생에서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것 역시 지나치면 우상이 됩니다.
셋째 새것의 우상입니다. 21절을 읽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무엇이나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테네는 당시 세계 정치, 철학, 문화, 예술의 중심 도시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여러 지방에서 새로운 사상이나 사조들이 끊임없이 소개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런 도시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은 새것을 늘 접할 수 있었고, 또한 늘 새것에 호기심을 기울이게 되었을 겁니다. 거기에 모든 시간을 바칩니다. 지난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새것도 지나치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과 혼과 육으로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육적인 즐거움, 곧 5감에 입각한 감각적 즐거움도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서로 사랑하는 남녀의 육체적 즐거움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즐거움에 집착하여 그것이 우상이 된다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지식은 꼭 필요합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며 지식을 쌓아가야 합니다. 지식을 얻는 쾌감은 대단합니다. 또한 그 지식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삶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러나 지식에 집착하여 그것이 우상이 된다면 역시 문제가 생겨납니다.
새것은 좋은 것입니다. 새옷을 입고, 새차를 타게 되면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새로운 문물에 대해 늘 열린 마음으로 대하여야 삶의 진보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새것에 집착하여 그것이 우상이 된다면 역시 문제가 생겨납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나쁘다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것에 집착하는 것, 그것은 우상에 빠지는 일이 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만, 돈 버는 데만 정신이 몽땅 빼앗겨 있는 사람은 돈이 그에게 우상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아름다운 일입니다만, 사랑에 정신이 빼앗겨 다른 일은 모두 소홀히 한다면 그는 지금 우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행위는 숭고한 것입니다만, 그 사랑에 소홀한 사람을 모두 죄인 취급한다면 그는 지금 우상에 빠져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자신의 기대심이나 가치관 때문에 몹시 화가 나고, 그 화 때문에 서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면, 그 기대심과 가치관 역시 우상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바울은 아테네가 우상에 빠져 있음을 보고 격분하였습니다. 그 격분의 근본 원인은 아테네에 대한 자신의 지나친 기대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전과는 사뭇 다른 행동을 하여 결국 사역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런 바울의 모습 역시 우상에 빠진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상을 타파하려다 그 열정이 지나쳐 우상에 빠진 행동을 하게 된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모습입니다.
사실 기대심은 종종 집착으로 이어지고, 그리하여 우리가 우상에 빠진 인생을 살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배우자에 대한 기대, 자식에 대한 기대 등으로 스스로 불행한 인생을 연출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불행한 인생이 바로 <기대의 우상>에 빠진 현상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삶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고, 지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새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사랑에 열심이어야 합니다. 그런 일들에 열심히 임하지 않으면 인생에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여서는 안 됩니다. 집착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 일들에 뿌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뿌리 없는 인생을 살라는 말입니까? 아니, 뿌리는 단 한 곳에 내려져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 안입니다.
하나님 안에만 뿌리가 내려져, 이제 삶의 즐거움을 얻는 일과, 지식을 갖는 일과, 새것을 받아들이는 일과, 돈 버는 일과, 사랑하는 일에 노력이 주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뿌리내려져 공급받는 자양분은, 이런 세상일에 열심히 임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줍니다.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값지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뿌리내려져 있지 않거나 그 뿌리가 약하면, 대신 세상일에 뿌리를 내리려 하게 됩니다. 그 때 집착과 우상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길입니다. 이를 상승의 길이라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세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이를 하강의 길이라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상승과 하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바른 길은 이 둘이 통합된 길입니다.
상승과 하강이 통합된 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우선 주기적으로 기도와 묵상을 통해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늘의 평화를 호흡합니다. 또한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자양분으로 세상일에 열심히 임하여 행복을 추구합니다. 물론 세상을 위해 아름다운 선행을 행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렇게 상승과 하강이 자신 안에서 메비우스의 띠처럼 통합된 길을 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깊게 뿌리내려져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일에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까? 혹 무언가에 집착하여 우상에 빠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상승과 하강이 통합된 길을 잘 걸어, 천상의 평화와 세상의 행복을 한껏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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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9/39 
노희담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