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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남쪽으로 한참 내려가면 파다논 섬이 있습니다. 이 섬에는 80여 가구가 모여 사는데 모두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물로 고기를 잡지 않고 폭탄을 터뜨려 고기를 잡습니다. 그것을 ‘다이너마이트 피싱’이라 부릅니다. 어부들이 사제폭탄을 만들어 바다로 가서 그 폭탄을 바다에 던집니다. 폭탄이 바다 속에서 터집니다. 그러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 바닥에 널려 있는 죽은 고기들을 주워 담는 겁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물로 잡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어획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로 말미암아 산호초가 파괴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지역에는 400여 종의 진귀한 산호초가 서식하고 또한 다양한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점차 사라지는 겁니다. 필리핀 바다의 80% 가량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고 산호초는 멸종의 위기에 빠져 있다 합니다. 필리핀 정부는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단속은 미미합니다. 또한 ‘다이너마이트 피싱’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죽기도 하고, 큰 부상을 당하여 평생을 불구자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어획량이 날로 줄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조만간에 고기를 잡을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어부들은 압니다. 하지만 어부들은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생계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해양환경단체에서 주기적으로 마을에 와서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중지하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캠페인이 실효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환경단체에서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환경단체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부들은 모두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중지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습니다.” 현재 동남아 일대의 산호초가 아마존 군락보다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필리핀 정부가 돈이 많으면 좋은 장비를 마련해 줄 터이지만, 그런 돈을 정부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처럼 어부들은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오늘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흔히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파괴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파다논 섬의 어부들의 문제는 탐욕이 아닙니다. 절박한 생존의 문제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그저 마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전혀 찾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는 외면하는 것입니다. 찜찜한 기분이지만 외면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겁니다. 둘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에 대해 혹자는 말합니다. “그 기도는 자기회피다. 무책임한 행동이다.” 옳습니다. 그런 기도가 있습니다. 자기회피의 수단으로 기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자기회피의 수단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하는 어부들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어부들의 경우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도 가끔 그런 순간을 만나게 되고, 타인의 경우에는 그런 순간을 허다하게 만나게 되는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기도할 힘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기도할 힘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 기도할 힘이 없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선가 기도할 의지를 안 갖는 것일 뿐입니다. 그분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납니까? 세수는 합니까? 밥은 먹습니까? 화장실에 들어가서 용변은 봅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기도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보비라는 이름을 가진 43살 먹은 남자가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고 졸도합니다. 그는 빈사상태에서 2주 동안 있다가 깨어납니다. 하지만 뇌혈관 장애로 전신마비 상태임이 판명됩니다. 의사는 그것을 감금증후군이라 부릅니다. 육체에 완전히 감금되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왼쪽 눈을 깜빡거리는 것입니다. 오른쪽 눈은 실명되었습니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말을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치료사는 보비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면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동의하지 않으면 두 번 깜빡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소통의 유일한 수단이 됩니다.
여기서 착안하여 의사소통 방법을 개발합니다. 우선 보비가 할 말을 정합니다. 그럼 치료사가 알파벳을 처음부터 천천히 불러줍니다. 그걸 듣다가 보비가 생각한 단어의 첫 철자가 나오면 눈을 깜빡이는 겁니다. 치료사는 알파벳을 불러줄 때 보비의 눈을 보고 있다가, 눈을 깜빡이면 그 철자를 노트에 적어 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단어를 찾아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비가 god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 합니다. 치료사는 알파벳을 불러줍니다. “a, b, c, d, e, f, g” 이 순간에 눈을 깜빡입니다. 그러면 치료사는 노트에 g를 적어둡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알파벳을 불러줍니다. “a, b, c, d, e, f, g, h, i, j, k, l, m, n, o” 이 순간에 눈을 깜빡입니다. 치료사는 o를 적어둡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a, b, c, d” 이 순간에 눈을 깜빡입니다. 치료사는 d를 적습니다. 단어가 완성되면 눈을 두 번 깜빡입니다. 드디어 god이라는 단어가 완성된 겁니다. 그렇게 문장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이 작업은 처음에 매우 어렵습니다. 마침내 보비는 그런 식으로 하여 책을 쓰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하여 완성된 책이 <잠수종과 나비>입니다.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눈 깜빡임을 통해 130페이지짜리 책이 완성된 것입니다. 보비는 그 책이 출간되고 열흘 후, 곧 1997년 3월 7일에 죽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보비는 전신마비 상태에서 다만 왼쪽 눈 깜빡임만을 갖고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런데 일상생활을 하면서 기도할 힘이 없다고요? 기도할 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은 갖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의 기도’는 자신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깊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몹시 두렵습니다.......” 그 말 속에 등장하는 모든 나를 내려놓는 겁니다. 혹은 아까 말씀드린 파다논 섬의 가여운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하는 어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런 무기력감은 나를 초라하게 만듭니다......” 그 말 속에 등장하는 모든 나를 내려놓는 겁니다.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의 기도’는 그렇게 나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나를 내려놓음은 곧 하나님께 내맡김입니다. 하나님께 내맡김은 수많은 나, 곧 절망하는 나, 두려운 나, 무기력한 나, 등의 수많은 나를 내 안에 가득 부여안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내맡겼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 안의 수많은 나를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곧 내려놓음과 내맡김, 이 둘이 한 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내맡김이 됩니다. 내맡김은 체념이나 회피가 아니라,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일입니다.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의 기도’는 그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내맡기는 일입니다.
기도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것을 임의로 A형 기도와 B형 기도라고 표현해 보겠습니다. A형 기도는 지금의 힘든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B형 기도는 지금의 힘든 문제를 내맡기는 기도입니다. A형 기도가 필요한 경우가 있고, B형 기도가 필요가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 A형 기도를 많이 드리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을 보면,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신 겁니다. 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는 장면을 보면,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역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신 겁니다. 제자들에게도 A형 기도를 드리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21:22)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마7:7) 예수님이 기도의 모델로 삼으라고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의 내용도 A형 기도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B형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은 처음에 A형 기도를 드리신 겁니다. 곧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하지만 금방 B형 기도로 바꾸셨습니다. 곧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하나님께 내맡기는 기도로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눅23:46)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의 기도’는 B형 기도가 더 잘 어울립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인생에서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은 없었습니다. 나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났고,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직장에서 부유하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큰 문제없이 제법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때가 없지 않았지만 견딜 만 했고 또한 노력하여 잘 헤쳐 나왔습니다. 내 인생에서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극한적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런 인생을 살고 있음을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분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문제로만 인생을 보고 있는 겁니다. 타인의 문제로는 인생을 보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을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 타인의 사연을 온전히 깊이 만나게 되면, 나 또한 그 사연 앞에서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없었다고 한다면, 자신 안에 갇혀 산 것이고 따라서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입니다.
저는 파다논 섬 사람들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가여운 마음과 또한 무기력감으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무기력감을 느끼는 저 자신을 내려놓고 그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내맡겼습니다. 그들이 ‘다이너마이트 피싱’을 버리고 좋은 도구로 물고기를 많이 잡아 부유하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보비가 매일 만나 도움을 받는 사람은 물리치료사와 언어치료사입니다. 두 사람 모두 여자인데, 한 번은 절망에 빠져 있는 보비에게 물리치료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믿음이 강해요. 당신을 위해 매일 기도해요.”
물리치료사는 어떤 기도를 드렸을까요? A형 기도를 드렸을까요, B형 기도를 드렸을까요?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한 병에 걸려 전신마비가 된 환자를 위해 정상인으로 회복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내맡기는 기도를 드렸을까요? 여러분 같으면 그런 환자를 위해 어떤 기도를 드리시겠습니까? 이런 경우가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아닐까요?
만약 하나님이 그에게 회복을 허락하셨다면 보비는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프랑스라고 하는 먼 나라에서 살고 있는 보비라는 인물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회복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 책을 쓰는 길로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보비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이 전해졌습니다. 보비 또한 잠수종처럼 물속에 갇혀 사는 인생에서 벗어나, 나비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나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보비는 그가 쓴 책에서 자신의 아이들 세 명에게 이런 권면을 합니다. “많은 나비를 가지기 바란다.” 나비에 대한 고운 꿈은 그가 잠수종처럼 완전히 갇힌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보비에 대한 하나님의 그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선택을 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는 모든 걸 내맡기는 기도를 드리지 않으시렵니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문제로 말미암아 가끔은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갇히게 됩니다. 또한 타인의 문제로 말미암아서는 자주 기도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갇히게 됩니다. 자신의 문제든 타인의 문제든, 그런 막막한 순간에 막막함을 느끼는 나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맡기지 않으시렵니까?
마지막으로 프랑소와 페넬론이라는 사람이 드린 기도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주여, 저는 당신께 무엇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만이 제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다. 제가 저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이 저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아버지여, 어찌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그것을 당신의 자녀에게 주십시오. 부수든지 고치든지, 끌어내리든지 높이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알지 못할지라도 저는 당신의 모든 뜻을 경애합니다. 잠잠히 저 자신을 산제물로 바칩니다. 저를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 뜻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습니다. 당신은 제 안에 계십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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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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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담
전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