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그의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두려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또한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해 핑계를 대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반응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그들에게 일종의 징계를 내리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신 것입니다. 앞의 것은 어두운 색조를 띤 그림이라 한다면, 뒤의 것은 밝은 색조를 띤 그림이라 하겠습니다. 두 그림의 색조가 사뭇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둘 다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징계도 은총이고 부끄러움을 덮어 주심도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바탕에는 동일한 은총이 흐르지만, 겉으로는 색조가 다른 두 그림으로 우리에게 반응하십니다.
지혜로운 부모도 아이들에게 같은 반응을 합니다. 곧 직면과 돌봄입니다. 직면을 어두운 그림이라 한다면, 돌봄은 밝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그 그림 밑에는 동일한 사랑이 흐르는 것입니다. 아이가 부족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직면은 필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아이는 부족한 행동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 직면이 꼭 필요합니다. 물론 돌봄과 병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도 이 두 가지로 반응해야 합니다. 색조가 어두운 그림으로 반응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색조가 밝은 그림으로 반응해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간단히 말해서 정의와 사랑이라 합니다.
첫째로 정의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의와 맥을 같이 하는 개념으로 자유, 공정, 진실, 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정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불의, 억압, 불공정, 거짓, 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흔히 세상은 악하다고 합니다. 불의, 억압, 불공정, 거짓, 악이 판을 치는 겁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합니다. 이런 불의한 세상에 대해 저항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많은 사람들이 불의에 저항하여 감옥에 가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행위들은 모두 정의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유념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일이 소중합니다만, 한편 자기 자신부터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정의의 모든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세우는 일과 자신을 바르게 세우는 일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둘이 합쳐져서 비로소 정의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의한 체제에 저항하여 혁명을 일으킨 사건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혁명에 성공하여 권력을 잡게 되면, 그들이 다시 불의를 자행하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그런 경우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는 잘 싸웠지만, 자신 안의 불의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간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정의가 아닙니다. 세상의 불의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과 함께 자신 안의 불의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바로 세운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청렴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진실로 정의로운 삶을 살고 있나를 판별할 때, 마지막으로 통과해야 할 문이 청렴이라는 겁니다. 그가 세상의 정의를 위해 감옥에 가고,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에 헌신한다 하더라도, 만약 청렴하지 않다면 그의 정의로운 삶은 한계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청렴이란 말을 국어사전에서 보면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청렴이야말로 공직자의 본래 직무이고,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청렴하지 않고서는 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실상은 어떠합니까? 부패공화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과 기업인과 공직자들 중에서 청렴한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공직자가 되기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의 과정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일어났던 부산저축은행 사태 때, 우리나라가 부패공화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습니다. 은행을 감시해야 할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이 모두 부패에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직자만 청렴해서는 안 됩니다. 일반 시민들도 청렴해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청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우선 청렴한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한계로 말미암아 때로 청렴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의의 문제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자기 의’의 문제입니다. 청렴하고 진실되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데 그것이 ‘자기 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자기 의란 독선과 비슷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청렴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되 언제나 ‘하나님의 의’로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정의’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랑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에서 정의는 색조가 어두운 그림이라 했습니다. 정의는 한 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그렇습니다. 한편 사랑은 색조가 밝은 그림입니다. 정의와 사랑은 이렇듯 색조가 다르지만 그러나 둘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입니다.
곧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하지 않은 정의는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의를 외치면서 사랑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편을 가르고, 더 나아가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기조차 합니다. 불의를 미워하되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의를 미워하여 불의를 행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겁니다. 이는 욕탕 물을 버리려다 욕탕 안에 있는 아이까지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프랑스 혁명을 들 수 있습니다. 절대 왕정이 지배하던 프랑스의 구제도인 앙시앵 레짐은 평민들의 불만을 가중시켰습니다. 마침내 1789년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국왕 루이 16세가 처형되었고, 이후 자코뱅파의 독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도자 로베스 피에르는 과격한 공포정치를 펼쳐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였습니다. 그가 권력을 잡고 있는 1년 남짓의 기간 동안에 30만 명을 체포하여, 그 중 1만 3천 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혁명 동지인 당통마저 처형하였습니다. 당통의 노선이 너무 온건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로베스 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 혁명은 퇴조 경향을 보였습니다. 사회 불안과 함께 강력한 지도자를 요구하는 여론에 호응하여 나폴레옹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혁명정부는 권력을 나폴레옹에게 위임하고 1799년에 막을 내렸습니다. 로베스 피에르는 사랑 없이 정의만을 추구한 대표적 경우라 하겠습니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인간의 정의였지 하나님의 정의는 아니었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정의와 무관한 사랑은 사람을 망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외치면서 정의에는 둔감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나약하고 무책임한 인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으로는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 이런 경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자식의 행복을 바라는 부모에게 정의는 위험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정의를 바라면서도 자기 자식만은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러한 부모의 이기적 자식 사랑은 정의를 수반하는 하나님의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설립하신 분은 김재준 목사님입니다. 김 목사님은 한국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김 목사님은 성 프란체스코를 매우 존경하여 청빈을 늘 마음에 새기며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평생 당신 수입의 상당 부분을 아무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제자들의 학비 보조에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젊은 시절부터 10개의 좌우명을 갖고 꾸준히 실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대인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최저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그리스도의 교훈을 기준으로 하여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평생 학도로 산다. 7)시작한 일은 좀처럼 중단하지 않는다. 8)사건 처리에는 반드시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산하(山河)의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학교 안에 김 목사님께서 손수 써 주신 글이 액자에 걸려 있었습니다. <慕義如飢渴(모의여기갈)> 의를 사모하고 의에 목말라 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일 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김 목사님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선봉에 서서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이 진실되고 청렴한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신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학생회에서 주관하는 선교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신청자는 열댓 명 되었습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공장에 다니고 한 팀은 청계천 판자촌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저는 공장팀을 선택하여 영등포에 있는 어느 공장에 취업하였습니다. 공장팀은 총 9명이었는데, 그 해 말에 송년회를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공장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여학생이 제법 많은 돈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인즉슨 자기가 며칠 전에 볼 일이 있어 종로 5가에 있는 기독교회관에 갔다가, 김재준 목사님을 우연히 만났다는 겁니다. 김 목사님은 그 여학생을 복도 끝으로 데리고 가서, 지갑에서 있는 돈을 모두 꺼내시더니 몽땅 주시더라는 겁니다. 몇몇 학생들이 겨울방학 동안에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어디서 들으시고 격려금을 주신 것입니다. 김 목사님은 당시 은퇴하셨기 때문에 교수가 아니셨습니다. 수입도 변변치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하는 학생들이 공장에 다닌다는 사실을 아시고 당신이 갖고 있던 모든 돈을 주신 겁니다. 그 일이 어린 저에게 깊은 감명을 안겨 주었습니다. 제 인생의 지침돌이 된 것입니다.
저는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시절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을 대단히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불의에 저항하면서 자신도 청렴하게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불의에 저항하기는 하는데, 자신 안에는 탐욕과 야심이 들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자기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로 살아가는 사람의 숫자는 더 줄어듭니다. 물론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따뜻한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의 숫자는 더욱 적습니다.
김재준 목사님은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그 적은 숫자에 포함되는 분이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사신 분이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정의를 구현하신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상을 둘러엎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악행과 위선에 대해 종종 꾸짖으셨지만, 이 일을 통해 몸을 움직여 불의를 응징하신 것입니다. 한편 예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신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 주신 일입니다. 당시에는 그런 여자는 돌로 쳐 죽였던 겁니다.
지난 1986년 10월에 우리교회가 설립예배를 드릴 때 김재준 목사님은 한지에 <地之鹽(지지염)>이라는 글씨를 써서 보내 주셨습니다. 이 땅의 소금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김재준 목사님은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 공동체도 예수님과 김재준 목사님을 본받아 이 땅의 소금이 되어,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길을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
|
772, 
9/39 
노희담
전혜리